또 한 해를 보내며
또 한 해를 보내며
  •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12.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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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어느새 연말이다. 1년 열두 달 중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12월이 벌써 스무날이나 지나가고 있지만 한 해를 돌아보기는커녕 하루하루 마무리해야 하는 일들에 치여 하루의 끝은 지쳐 잠들기 일쑤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수천 일이 지나도 마무리될 수 없는 것들을 굳이 꺼내어 보는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새해에 슬프게도 했다가 행복하게도 할 그것. 바로 사람이다.

언젠가 무심코 바라본 핸드폰에 눈길을 끄는 알림이 하나 떴다. 작년 오늘, 그리고 재작년 오늘 내가 남긴 기록과 사진을 한 소셜미디어에서 보여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기억하지 못했을 나의 자취가 궁금해 클릭해보니 여러 사람과 환하게 웃으며 그 순간을 행복이라 기록한 화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의 나는 이 공간에서 사진 속의 나와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문득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누군가와는 이제 연락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멀어졌다는 사실이 천천히 하지만 확연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짓고 웃음 짓던 인연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뒤늦은 후회가 한숨으로 물밀듯 밀려나왔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에는 이런 식으로 매번 잃어간 인연들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잡으려 아등바등하며 살아봤자 결국 인생은 잃고 잃고 또 잃는 것에 불과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잠식해갈 때쯤, 누군가 나를 불렀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인생의 어느 시점,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또 다른 인연이었다.

그 사람을 보니 문득 잃은 만큼 새로 얻어진 나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지만 마음을 한껏 다 퍼내어 준 인연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어도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인연들, 그리고 몇 안 되어도 나라는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인연들까지. 새롭게 인연의 실타래를 엮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 순간 멀어져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상실감과 절망을 걷어내 주지는 못했어도 그들 덕분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문득 감사한 마음이 넘쳐흘렀다.

친구가 전부여서 교우관계가 어그러지면 삶의 의미를 놓아버리기도 하는 10대가 아닌데도 누구나 여전히 예고 없이 내 영역을 침범하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온통 다 휘청거릴 때가 많을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어떤 것도 사람보다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없었던 것 같다.

가끔은 그런 사람과 한 공간에 있어야만 했고, 끊임없이 마주쳐야 했음에도 지금까지 버텨온 내가, 그리고 당신이 무척이나 안쓰럽지만 그만큼 또 기특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너무도 쉽게 말하는 누군가의 굴레 속에서 오늘도 내일도 빙빙 돌아야 하는 운명일지라도, 다가오는 새해에는 올해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덜 상처이길 간절히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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