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겨우살이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2.12.1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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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마당 정원 예원'에 겨울이 왔다. 새로운 절기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가을이 겨울로 옷을 갈아입을 때는 나무와 꽃을 위한 겨우살이 준비로 바쁘다. 겨우살이를 잘 준비하지 못하면 정성껏 키운 나무와 꽃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따뜻한 봄날에 아름다운 꽃을 다시 보려면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추위에 약한 수국은 따뜻한 이불을 준비해 주어야 한다. 벼농사를 짓고 남은 볏짚을 구해 덮어주면 좋다. 하지만 벼농사가 모두 기계 농사로 바뀌면서, 추수가 끝난 논에서 원하는 볏짚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모두 소들을 위한 사료로 쓰이기 때문에, 탈곡과 동시에 비닐로 포장된다. 그래서 마당 정원 예원에서는 볏짚 대신 쌀을 정미(精米)할 때 나오는 왕겨를 사용한다. 한동네에 같이 사는 어릴 적 친구인 두보(풍류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필자가 붙여준 호)네 집에서 왕겨를 한 가마 얻어다, 수국 위에 덮어주면 훌륭한 이불이 된다.

지난봄에 화분에서 땅으로 옮겨 심어 약한 뿌리를 내린 무화과나무도 왕겨 이불이 필요하다. 예쁜 꽃을 피워 안젤라가 좋아하는 바늘꽃도 왕겨 이불을 덮어준다. 예원의 대문 옆 화단에는 세 그루의 목백일홍이 있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가 심고 정성껏 가꾼 나무다. 목백일홍도 추위에 약해 겨우살이가 필요하다. 따뜻한 천을 나무에 감아주고 부드러운 끈으로 묶어주어야만 추위와 바람을 견디고 겨울을 날 수 있다.

마당 정원 예원의 화분에는 체리 세이지, 파인애플 세이지, 멕시칸 세이지, 개나리 재스민, 여우 골리, 라벤더, 쿠페아, 솔잎 도라지, 청화쥐손이, 샤프란과 같은 꽃들이 산다. 이들도 추위를 이기는 겨우살이가 필요하다. 화분의 꽃 대부분은 이사 오면서 지은 유리온실에서 겨울을 난다. 추운 바람은 막아주고 따뜻한 햇볕이 종일 들어오기 때문에 겨울에도 꽃들이 자랄 수 있다. 추위에 더 약한 꽃들은 집안에서 우리와 함께 산다. 벽난로의 따뜻한 온기와 겨울 햇살이 꽃들을 지켜준다. 이렇게 겨우살이를 마친 꽃들은 눈보라와 추위를 이겨내고 새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삶에도 행복을 위한 겨우살이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는다. 상처는 평상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불행이나 위기 때는 더 도드라져 아픈 상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가까운 사람이 던진 가벼운 말의 상처도 관계가 나빠지게 되면 큰 고통이 된다. 어려움과 불행한 시기를 잘 이겨내기 위한 행복 겨우살이가 필요한 이유다. 작은 상처라도 평소에 잘 돌보아 주고, 덧나지 않게 해야 한다. 깊은 마음의 상처와 고름은 감사와 용서라는 고약을 써서 치료해야 한다. 불행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평소 행복의 추억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고 상처를 치유하는 행복 겨우살이가 필요하다. 따뜻한 봄날은 지금 시작하는 행복 겨우살이로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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