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붕이는 내 친구(5)
붕붕이는 내 친구(5)
  •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2.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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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김영선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원

 

“에그, 어딘지 알아야 빠져나갈 거 아냐.” 
붕붕은 속이 탔다. 기도하듯 낮게 중얼거리자 기적처럼 ‘펑’소리가 났다. 빛이 터지면서 약하게 화약 냄새도 느껴졌다. 금방 사라진 냄새에 혼란스러웠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해서 갸우뚱했다. 
‘밖에서 들어오나, 창이 어딨더라?’ 
벽을 돌아보려 고개를 돌렸다. 휘휘 소리가 귀를 스쳤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예민해졌나?’ 
둔감하던 자신이 아니던가. 붕붕은 스스로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림자 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물체를 보니 반갑기도 했다. 붕붕은 상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니 눈알이 빠질 듯 저렸다. 붕붕이 눈을 비비는 사이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그깟 게 뭐가 어렵다고……. 셈도 못 하는 놈이.” 
붕붕은 서운해서 코를 훌쩍였다. ‘빈정대다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억울해서 금방에라도 눈물이 펑 터질 것 같았다. 뭔가를 못 한다고 오나가나 욕만 먹으니, 살아서 뭣하나 싶어 우울했다. 
문득 숫자가 떠올랐다. 머리를 가득 채운 수는 바로 0이었다. ‘0은 텅 빈 수니까, 맞아! 0이면 되는데.’ 
0은 얼마를 보태든, 끄떡없이 순수하게 상대를 존중했다. 남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앓는 것처럼 입술로 ‘0’을 불렀다. 웅웅 소리가 회오리를 만들며 눈앞에 맴돌았다.
“0을 알다니, 너, 바보가 아니구나!” 
그림자의 날개가 펄럭거리며 바짝 다가와 붕붕이 뒤로 물러섰다. 천재라도 되는 것처럼 칭찬하자 헷갈렸다. 어쨌든 붕붕은 ‘바보 아님.’이 확인된 것 같아 기분이 풀렸다. 
공기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누군가 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뿔싸. 그 순간 망치 손잡이를 휘두른 것처럼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치고 지나갔다. 
“누구야?” 
붕붕은 화들짝 놀랐다. 그건 아파서라기보다 일종의 공포 사촌이라고나 할까. 상대는 자루 같았다.
“끼악!” 눈앞에서 복주머니 형태의 물체가 꿈틀대자 붕붕의 얼굴이 단박에 하얘졌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오줌을 지렸다. 
“더러워!”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들켰다면 어땠을까. 붕붕은 오히려 안심했다. 
마치 주머니 모양의 고치가 변태하여 나비가 탄생하는 것처럼 그림자 벌이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꼭 집어 말하면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쓴 모양새였다. 이번엔 아예 쉬를 쪼르륵 쌌다. 
붕붕은 바닥에 흥건한 액체를 보고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자신의 파란 줄에 매달았던 이파리로 김이 피어오르는 가랑이 사이를 쓱쓱 문질렀다. 
‘기분 더러운걸.’ 눈동자를 째지도록 옆으로 당겨 사방을 살폈다.
“누가 본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가 ㅤㅂㅡㅇㅤㅂㅡㅇ 잡는다는 말이 있던가. 이번엔 귀신처럼 생긴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여러 가지 색이 드러나면서 눈이 생기고 동그란 입이 오물거렸다.
“난, 하양이야! 요정이란다. 0을 안다면 넌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어. 0은 정말 끈질긴 녀석이거든!” 
붕붕은 오줌 지린 자욱이 사라진 게 더 신기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격려한 게 맞아?’ 아무것도 아닌 0 더러 끈질긴 녀석이라니. 헷갈렸다. 
붕붕이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때마침 하양이 발사대 위에 발뒤꿈치에 힘주어 섰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상상하지 못한 무서운 속도로 날자 재빨리 몸을 수그렸다.
“소리가 난다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결국 0은 빈 게 아니란 뜻이지.” 
하양은 그 순간에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째지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붕붕은 귀를 막았다. 하양이 제 몸 두 배인 창을 좌우로 흔들며 무사처럼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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