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보금자리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12.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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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가끔씩 이런 상상에 빠져들고는 했다. 한 낮을 장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녁이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대해서다.

저마다의 둥지를 찾아드는 모습이 성스럽다고 해야 하나. 시작되는 어둠은 삶의 휴식이며 밝은 날을 위한 새로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그만큼 낮과 밤의 대비 속에서도 우리는 저마다 중요한 몫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개별주택에 사는지라 오랫동안 방치해둔 화분이 있다.

게으름과 상관없이 아래층까지 옮기기도 그래서 아마 두 어 해도 넘게 그 자리에 두었지 싶다.

어느 한 해는 민들레가 와서 살다 가더니 올해는 알 수 없는 잡초 두 종류가 자리를 잡는 거였다.

그것도 생명이라 작은 씨앗이 바람타고 왔었나보다. 환영은 못해도 ㅤ쫓아버릴 생각일랑 처음부터 아예 않았다.

이끼로 뒤덮인 빈 화분에서 싹을 틔워 제 몸을 키우고 봄부터 초겨울 까지 잘도 살아내니 오히려 내가 고마울 뿐이었다.

잡초가 동거하듯 잘도 살아낸다. 어느 정도 몸체가 커지더니 하나는 오동나무인 듯 하고 하고 하나는 민들레이다. 더구나 현관 앞에 버티고 있어서 드나들 때마다 눈길을 쉽게 사로잡아 주고는 한다.

여름을 지나면서 제법 왕성한 생명력을 뽐낸다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수시로 착각에 빠져드는 버릇이 생겨났다. 서로 달라도, 비좁은 공간이어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내 삶과 흡사해서다.

부부의 인연과 대비되고 있다. 까마득한 세월을 건너온 탓에 남편과 나는 어느덧 머릿결이 하얗게 변한지 오래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보금자리에 대한 그와 나의 마음이었다.

자식들을 키워내고 현재에 충실한 의무를 내려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후회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부분에서 서툴게 시작되었지만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인생의 결실을 여러 가지로 거두었으니 그야말로 축복이 아니겠는가.

무형이 곧 유형으로 변하여 보금자리라는 현실을 깨닫는 즈음이다.

보금자리라는 곳에서 안위를 얻고 또 다른 내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들기에 그렇다.

짧은 식견이라 해도 괜찮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를 만든다고 보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날아다니는 참새도 제 집이 소중하고 하다못해 한 해 살이 들풀들도 제 살 곳을 찾아나서는 경이로운 풍경에서 현재를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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