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고 핀 꽃
철모르고 핀 꽃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11.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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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날씨가 추워지자 기어이 꽃들이 얼어버렸다. 며칠 전 주택가 골목을 지날 때이다. 개나리꽃이 꽃망울을 터트려 눈길을 끌었었다. 산책길에 유채꽃도 봄 인양 꽃을 피웠지 않은가. 지난봄 씨앗이 떨어져 늦가을에 싹을 틔웠을 터이다. 겨울의 문턱인 계절에 때아닌 눈 호강을 하는 듯해 반갑기도 하면서 한 편, 곧 추위가 찾아오면 모두 얼어 버릴 게 뻔하니 기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봄에 피어야 할 꽃이 철없이 피었단 말인가.' 입동立冬도 지나고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도 지났는데 그동안 날씨를 보면 절기가 무색할 만큼 따뜻했다.

우리 지역은 춥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초순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졌었다. 추워질 때도 되었다 싶고 겨울의 시작인 줄 알았다. 조금 짓는 농사이긴 하지만 밭에 남아있는 농작물을 거둬들이고 서둘러 김치를 담그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잠시 찾아온 추위는 곧 누그러지고 이십여 일 온화한 날씨는 계속 이어졌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계속 유지되다 보니 식물도 봄이 온 줄 착각하고 꽃을 피워냈으리라.

추운 겨울특수를 누리는 업계에서도 이상기온으로 난감하다는 기사를 접한다. 이맘때면 스키장 개장 소식이 들려올 때이다. 기온이 높아 인공눈을 만들 수 없어 개장을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규제도 많이 풀리고 첫 성수기라 큰 기대를 했을 업계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닐 게다. 겨울 축제를 준비하는 지자체에서도 준비가 한창일 터인데 무사히 축제를 치르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소식이다.

자연은 정직하다. 나무들은 가을을 맞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가 날씨가 잎을 모두 떨구고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한다. 이미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기고 맨몸으로 추위에 맞설 태세를 하고 있다. 꽃눈을 만들어 겨울을 맞고 봄이면 꽃을 피우려던 나무들이 예상하지 못한 날씨 탓에 봄이 오는지 겨울이 오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철모르고 피는 꽃을 탓하겠는가. 이렇게 겨울의 길목에서 봄꽃들이 피어나는 현상은 자연이 인간에게 위기를 알리는 경고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좀 더 따뜻함과 시원함을 위해, 안락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며 지구 온도를 높이는데 한몫을 해왔다. 삶이 윤택해지는 사이 빙하가 녹고 기록적인 폭염, 집중폭우로 재해를 입거나 반대로 극심한 가뭄을 겪기도 한다. 세계기상기구에서 발표한 `2022년 기후 잠정보고서'에 최근 8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기간이었다고 한다.

오늘 아침 추위에 얼어버린 꽃송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보다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그 길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 가급 적이면 자동차보다 걷기를 선호하고, 일회용품 덜 쓰고, 조금 덥게, 조금 춥게 사는 작은 것들이지만 우리는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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