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그만 하라네
김장 그만 하라네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11.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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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11월도 중순을 지나면 기온도 제법 많이 하강하고 바람도 소슬해서 마음도 스산하다. 소일삼아 왁자하게 모이던 문화원의 취미교실에 가도 여느 때 같잖게 썰렁하다. 너도나도 김장 때문에 바쁘다고 한다. 전에는 주부들만의 일이었다면 요즘은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나 보다. 박선생도 조선생도 김장하는데 거들어야 한다면서 못 나온다고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생활패턴이든 뭐든 참 많이 달라진 것을 실감하지만 유독 김장의 풍습만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길까

어머니들은 말할 수 없는 중노동이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유독 김장하는데 정성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고 나 또한 기를 쓰고 열심히 김장을 한다. 꽉꽉 채운 김치통을 이 아들 저 딸에게 보낼 때의 만족감은 언제나 소중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만 상상해도 행복함을 알기에 기쁘게 기쁘게 담그는 일 년 농사 김장, 어쩌면 이 전통은 대대손손 지구가 끝날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지 않을까?

나라고 예외이겠는가? 결혼하고 그 이듬해, 남편의 직장이 전주에서 충주로 옮겨져 이사하고 두어 달 지난 후 처음으로 김장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50여 년 전 일이다. 그때는 바리바리 싸서 보낼 형편이 된다 해도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엄마김치를 공수해 먹을 시대가 아니었다. 친정어머니께서 일러주신 대로 마늘과 파, 새우젓 정도를 고춧가루에 풀어서 김장했는데 생전 처음 담근 김치가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먹어봐도 놀라운 맛이었다. 주인집 아줌마도 비슷하게 전근 와서 살던 이웃들도 손맛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아 너도나도 한 포기씩 가져가는 바람에 겨울을 나기도 전에 바닥을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첫 김장의 결과가 좋은 탓이어서인지 모르지만 그 뒤로 해마다 자신 있게 김장을 했고 내가 담근 김치는 맛있다는 자부심 또한 갖게 되었다. 그러니 아들딸 모두 시집장가보낸 후에도 바리바리 보내주는 기쁨을 만끽하느라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김장. 어쩌면 내 솜씨 자랑이기도 했는데,

몸이 좀 아픈 들 대수랴, 한 이틀 앓고 나면 거뜬해지는 걸, 아이들의 김장김치는 오직 내가 담당한다고, 나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작년에도 김치를 가져가면서 딸 아이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엄마 김치를 배워서 내가 해드려야 하는데, 언제 배우지? 고마워요 엄마김치 최고” 엄지손가락을 높이 추켜올리던 모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런데! `**김치를 조금 사 보았는데 너무 맛있어요. 김장할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엄마, 이제부턴 제가 주문해서 보내드릴게요' 난데없이 카톡이 카톡카톡 거리더니 오늘은 김치 한 통을 들고 들이닥쳤다. 집에서 담글 필요가 없단다. 주문한 김치가 너무 맛있어 사 왔단다.

“그래? 그럼 내야 편하긴 하지” 우물우물 대꾸하는데 말꼬리가 힘이 하나도 없다.

어미가 해준 김치보다 김치공장 김치가 더 맛있다? 한 해도 아니고 두 해도 아니고 장장 이십여 년을 해 먹였는데 그럼 맛없는 것을 그냥 먹어줬다는 것인가! 떨떠름한 내 표정을 읽은 딸아이는 손사래를 치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물론 엄마 김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받아먹기만 할 순 없잖아요? 엄마 솜씨를 배워둬야 하는데 그럴 처지도 시간도 없고, 엄마, 요즘엔 밥하기도 넘 편해요. 국이든 반찬이든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에 배달되어 있어요. 맛까지 좋아요. 맞벌이 딸 걱정 놓으시고 엄마도 이제 즐기며 사셔요.”

설교하듯 설득하고 난리다.

“그래 추세 따라가야지 어쩌겠니?” 믿고 의지하며 자신감 뿡뿡 내뿜던 나의 존재가치가 다 했음을 깨닫는 아픈 시간이다. 나이를 생각하자 해도 왜 이리 섭섭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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