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보다 나은 대응을 하라
침묵보다 나은 대응을 하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11.2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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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을 덥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태인을 박해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곁엔 나서 줄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 보스턴 대학살기념관 광장의 기념비에 새겨진 시다. 히틀러 치하에서 반나치 운동을 전개한 마르틴 니묄러 목사가 나치의 횡포를 방관하는 구성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지었다고 전해진다. 권력이 타인에게 가한 부당한 박해에 눈을 감다가는 언젠간 당신도 같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경구이기도 하다.

엇그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최고위원이 이 시를 낭독했다고 한다.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 침묵하다가는 언젠가 우리도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니 일치단결해 강력 대응하자'는 취지로 이 시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의 개인적 사법 리스크에 당 전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선을 긋자고 나선 의원들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이기도 할 터이다. 목적은 분명해보이나 지금 이 시기에 이 시를 인용한 것이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당내에서도 상황을 터무니없이 비약시킨 과도한 표현이라는 쓴소리가 터졌다.

박 최고위원의 발언은 당의 결속을 부탁하는 호소로 들리지만 한편으론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하는 SOS 신호로도 읽힌다. 이 대표의 수족을 차례차례 공략한 검찰의 칼끝이 몸통으로 옮겨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최근 이 대표와 가족은 물론 지인들의 금융계좌까지 추적에 나섰다.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검찰에 맞설 카드가 마땅찮은 데다 `당의 자원과 권한이 대표 측근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견이 당내에서 고개를 들자 나치 시대의 시구까지 동원해 대오 정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이 대표의 방어에만 몰두하다가는 `검찰 수사로부터 누군가를 지키려는 무모한 아집'으로 몰락을 자초한 문재인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있다는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와중에도 노웅래 의원이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자택 압수수색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3억여 원의 현금 다발이 발견됐다. 노영민 의원은 취업청탁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대표의 검찰 소환이 목전에 닥친 당으로서는 더 따가워질 여론의 눈총을 걱정해야 한다.

더욱이 이 대표가 당에 안긴 사법 리스크는 대장동 의혹에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배우자의 법인카드 유용, 성남FC 불법 후원금(제3자 뇌물수수) 의혹 등과 관련한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대기 중이다. 장기간 검찰의 파상공세와 방탄정당 논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 집중되는 수사가 선택적이고 편파적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낮은 국정지지율은 공정성에서 신뢰를 얻지못하는 검찰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검찰의 편파성이 민주당 인사들에게 제기된 혐의들을 무죄로 단정하는 징표가 될 수는 없다. 검찰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냉철한 의식에 맡기고 제기된 혐의를 명징하게 소명하거나 최소한 설득력있는 해명을 내놓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급작스런 선장의 부재로 초래될 지 모를 난파에 냉정하게 대비해야 한다.

동정적 여론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부질없는 헛발질부터 멈췄으면 한다. 명색이 당 대변인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가짜 뉴스로 판명된 데 이어 최고위원이 캄보디아에서 심장병을 앓는 아동을 위문한 김건희 여사가 조명을 동원해 사진을 찍었다는 허무맹랑한 의혹을 제기했다가 역공에 휘말렸다. 박찬대 의원은 침묵도 과오라고 했지만 이런 수준의 대응을 하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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