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땅! 땅!
땅! 땅! 땅!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11.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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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땅이 있으니 하늘이 있는 걸까? 지구의 표면인 땅, 인적 미답인 곳이 그리운 것일까? 땅은 유일한 희망이며 내게 밀알이 되어 줄 거라 믿었다. 두툼한 땅을 갖는 일이 내 살을 찌우는 일이라 생각했다. 오래전 나는 혼돈과 불안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늘 혼자인 듯했고 누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이나 특별한 미래에 관해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이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주도적인 삶과도 거리가 멀었다.

땅 위에 싹을 틔우기 위해 햇살을 찾아다녔고, 냉혹한 추위에 벗어나고 싶어 어둠과 긴 싸움을 했다. 어느 땐 힘들어 숨어버리고 싶었고, 맥없이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다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면 신을 원망하며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거나 간섭받는 일은 더더욱 싫었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객기라면 객기다. 그야말로 독불장군이었다.

그렇게 오기를 부릴 수 있었던 건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계시가 있었다. 불안하고 절박했던 내게 신의 은총이었을까?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 적도 없는데 무의식 속에서 늘 어떤 사건이 떠오른 것이다.

`땅! 땅! 땅을 사야 해' 갑자기 새벽 잠자리에서 내린 생각이다. 순간순간 기억되거나 기억하지 못할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침을 맞았다. 햇살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땅 한 평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무슨 돈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도 잠시 `까짓것 사면되지 뭐.'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대범해지기로 했다. 지금까지 충동적으로 벌여 놓고 스스로 해결한 나를 믿어보자고 다짐했다.

대출을 끼고 무조건 땅을 샀다.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 인근에 밭 508평을 매입했다. 월악산 등산로 초입이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 후 나는 빚을 갚기 위해 죽으라 일했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개미처럼 살았다. 내가 가진 이 땅이 나를 지키고, 삶의 희망이 되어 줄 거라고 믿고 또 믿었다. 실수투성이인 나에게는 반복된 경험과 반성의 시간도 사치였다.

이른 새벽에는 식당에 채소 배달을 했다. 어느 날 배달 중에 도토리묵 상자가 뒤집혔다. 굴러다니는 도토리묵을 정신없이 주워담는 나 자신이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속상한 날에는 술과 기름진 고기가 밥 대신이었다. 덕분에 땅이 준 선물로 똥배만 나왔다. 돈을 좇는 무지한 시간을 살다 보니, 앞만 보며 더 큰 것을 쫓았다.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도대체 땅이 뭐기에, 이토록 애간장을 태우며 살아왔단 말인가? 나는 내 밭을 일구지 못했다. 욕심만으로 손에 땀이 나도록 힘겹게 버티며 지내왔다. 나는 밭을 돌보고 넓은 세상을 `일구고 돌보아야!' 했었다. `일군다.'라는 말은 땅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의미는 보살피고 믿고 의지한다는 말이다. 나는 한 번이라도 내 마음을 돌본 적이 있는가? 나의 객기로 그럴듯한 프레임 속에 가두어 놓고 집착하며 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을 혹사한 건 아닌지? 이제부터라도 순간의 선택이 아닌 상황적 판단과 진중한 사고를 해야겠다.

땅은 라틴어로 `humus'이고, 인간은 `human'이라고 한다. 인간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겸손하다는 뜻의 `humility'는 자신을 땅까지 끌어내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땅에 가깝게 허리를 굽혀 낮추라는 것이다.

이제 와 땅을 보살피며 살아갈 지혜를 생각한다. 헛간에 버려진 녹슨 호미가 되어 깨우침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 무의식적 은총이든, 무속이든, 객기든 다 버리자. 나를 위한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평생 빚만 갚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신발을 벗고 등을 굽혀 땅을 일구듯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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