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2.11.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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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아들이 뜬금없이 곰취나물 타령이다. 몇 년동안 감기 한 번 안하던 녀석이 몸살을 심하게 앓고 나서 봄에 먹은 곰취나물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지난 봄 퇴직한 교장선생님이 정갈하게 손질하여 신문지에 곱게 담아 보내주신 곰취나물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 앞 마트에 들렀더니 계절을 잊은 곰취나물이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딱 한 봉지 덩그마니 남아있는 곰취나물을 뺏길세라 황급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취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깊은 산에서 자생하는 대표적인 산채다. 독특한 향기가 나는 채소라고 해서 향소라고 부를 만큼 강한 향이 미각을 자극해 봄철 입맛을 돋우어 준다. 봄철, 꽃들로 화려해지는 자연과 달리 나른해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워주는 강렬한 향을 지닌 향채소인 것이다. 덕분에 봄의 산과 들은 온통 생기와 향기를 뿜어내는 보약들로 가득하다.

취나물 중에서도 곰취는 맛으로나 향으로나 으뜸이라 친다. 해발 600미터 이상 높은 산에서 자란 곰취는 밝은 연녹색의 부드러운 잎에 줄기끝은 붉은빛이 감돈다. 심장 모양의 넓은 잎은 톱니모양 가장자리와 광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름 탓일까? 곰취 잎을 펼쳐놓고 보면 어째 곰의 발바닥 모양 같기도 하다.

깊은 산 속에서 자라는 곰취는 곰이 잘 먹는다 하여 곰취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겨우내 동면을 마친 곰이 가장 먼저 찾는 먹이로 곰이 여린 곰취싹을 핥고 기운을 차리는 나물인 것이다. 서양의 곰돌이 푸우는 꿀단지를 애지중지 들고 있지만 겨울잠 깨어나 숲을 어슬렁거리는 우리네 곰은 곰취를 한 움큼 듬쑥 쥐고 있을지 모른다.

약효가 있는 산나물들이 대부분 씁쓰름하듯 곰취 역시 쓴 맛이 나면서도 독특한 향이 강해 한번 맛에 길들여지면 해마다 봄철이면 반드시 찾게 된다는 나물이다. 특히 어린잎을 생으로 쌈을 싸 먹으면 쌉쌀하면서도 오래도록 입안에 감도는 향이 일품이다. 잎이 조금 거세지기 시작하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을 찍어 먹고 억세진 곰취 잎으로는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한다.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곰취는 명실상부 봄철을 대표하는 취나물이지만 하우스 재배가 일반화되면서 계절 불문하고 어렵지 않게 맛 볼 수 있다.

급하게 마트에서 공수해온 하우스표 곰취를 다진마늘, 깨소금에 참기름을 넣고 곰취나물무침으로 내놓았다. 통깨를 듬뿍 얹은 곰취나물 등판으로 입맛을 잃은 아들이 식탁에 다가앉는다. 그런데 어째 보기와는 달리 곰취향이 제왕 명성에 미치질 못한다. 향만큼은 제철 곰취를 흉내낼 수 없나 보다.

곰취나물 옆자리에는 올가을 지인이 직접 농사지어 보내준 배추가 놓였다. 그저 툭툭 뜯어 씻어 놓은 배춧잎의 달큰한 향이 싱싱하다. 제철보다 몸값 비싼 곰취가 김장철을 앞두고 가격이 폭락했다는 흔한 배추에게 완패다. 곰취 타령으로 노래를 부르던 아들도 물이 뚝뚝 흐르는 샛노란 배춧잎을 된장에 푹 찍어 입에 넣기 바쁘다. 아무래도 곰취의 쌉싸름한 어린잎은 내년 봄에 맛보아야겠다. 잎이 억세지기 시작하면 곰취장아찌도 넉넉히 만들고 말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봄나물 또한 겨울의 언 땅을 견디고 여린 잎을 키워내는 힘을 기른 후에야 맛과 향으로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비바람과 천둥 벼락을 맞고 자란 잎이 비로소 자신의 향을 품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곰취가 아니라 배추의 계절이다. 그리고 곰취향을 누리게 될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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