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미끼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11.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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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낚싯대를 던진다. “퐁”하는 소리로 잔잔하던 물 위에 동그란 원이 퍼진다. 데크를 걷던 내 눈길이 동그라미를 따라간다. 크기를 키우며 사라지고 다시 저수지는 고요해진다. 진을 친 강태공들은 꽝 조사가 더 많은듯하다. 입질도 없이 조용해 보인다. 부채꼴 모양으로 펴놓은 낚싯대의 찌만 응시하고 있다.

위장의 귀재인 씬벵이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다. 길고 가늘게 솟아있는 등지느러미는 낚싯대 역할을 한다. 이것을 흔들어 물고기를 유인하여 잡아먹는다. 고기가 미끼에 걸려드는 건 순식간이다.

민첩하지 못한 녀석은 보호색으로 위장한다. 수초인 양 미동도 하지 않고 낚싯대를 내밀어 기회를 엿본다. 진득이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빨아들인다. 숨어서 낚싯대를 내밀고 있는 씬벵이의 모습은 보이스피싱을 연상시킨다. 전화로 미끼를 던지는 사기 수법이다. 이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위장해 접근한다. 검찰, 금감원, 납치범, 지인, 가족까지 사칭해 덫을 놓는다. “엄마. 핸드폰 액정이 깨져서 수리 맡겼으니 여기로 문자 해줘” 이런 메시지를 나도 받은 적이 있다. 몇 번 삭제하면서 조소를 날리곤 했다.

시누이의 남편 되시는 아주버님은 고희를 넘긴 연세다. 평생 일만 하고 돈만 벌 줄 알았지 쓸 줄 모르는 분이다. 지금도 백화점에서 옷을 백만 원 주고 샀다고 하면 기절하실 정도다. 웬만한 건 십만 원이면 다 사는 줄 안다. 여태껏 은행 일이며 돈 관리를 시누이가 도맡아 해왔기에 세상일에 어둑한 편이다.

이런 분에게 아들은 얼마나 좋은 미끼였을까. 나와 같은 문자를 받고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답장을 했다고 한다. 핸드폰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니 서둘러 요구하는 것들을 다 찍어 보내주었다. 신분증, 계좌번호, 비밀번호까지 고스란히 그들에게 넘어갔다. 일을 마친 아주버님은 시누이에게 사실을 말한 것이다.

시누이는 곧바로 확인을 했다. 마흔이 넘은 아들이 혼자 힘으로 그걸 해결하지 못해 아빠에게 문자를 했을 리 만무다. 그때부터 비상사태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통장을 정지시켰다. 완벽히 하느라 주민등록증 분실신고도 냈다. 다행히 아직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한숨 돌린 조카와 시누이의 지청구를 아주버님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다.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일을 왜 모르느냐고 큰소리를 냈다. 뉴스도 듣지 못하고 귀를 닫고 사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뒤늦게 깨닫고 자신의 바보스러운 행동에 어처구니 없어하셨다. 부모에게 자식이라는 덫은 치명적인 유혹임을 이용한 것이다. 어디 그게 당한 사람의 잘못이랴.

어쩌다 걸려드는 이가 있어 그들은 무자비로 미끼를 던진다. 변작기로 조작해 해외 발신번호를 국내번호인 010으로 바꿔 속인다. 또 가로채기 앱이란 링크를 통해 핸드폰에 악성 어플을 깔게 만든다. 이 앱은 어느 곳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단체로 전화가 간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들은 자신을 내팽개친 사람들이다. 지나간 많은 날의 어제를 펼쳐놓고 분명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본다.

가까이 들뜬 환호성이 들린다. 제법 큰 녀석이 걸린 모양이다.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고정시킨다. 물고기가 낚싯대 끝에서 몸부림을 친다. 아등아등했던 나의 40대가 같이 매달려 있다. 몸서리치도록 초라했던, 힘들어서 외로웠던 나의 시간들을 꼬옥 껴안는다. 아마 나를 키운 건 그 시간이었으리라. 눈시울에 눈물이 엉기는 그 세월이 지금의 나를 온전히 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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