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해방일지
머리카락 해방일지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11.1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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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미용실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마녀의 저주로 유폐된 공주의 처연함처럼 미용사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탈모가 시작되었네요“ 라든가 “머릿결이 약하네요” 등의 말을 들으면 그저 낡고 초라한 머리카락을 미용사에게 안기듯 줘버린다. 이렇게 저렇게 파마모양을 머릿속에 그려가지만 다 그만두고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원장님' 하는 심정으로. 일 년에 한 번 가서 일 년에 한 번 다시 나의 나이 듦과 모를 초조함과 자꾸 빠지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하냐는 걱정 섞인 응석을 부린다. 그러면 미용실 원장님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순한 파마 약으로 나의 머리를 물들인다. 그때 만큼은 내 머리카락의 주체는 미용실 원장님이다.

파마가 되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맥락 없이 떠오른 『라푼젤』 동화. 머리카락이 얼마나 건강했으면 성인 남성이 긴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 그녀와 사랑에 빠졌을까, 그래도 머리 가죽이 아팠을 텐데 얼마나 그가 좋으면 그 고통과 수고를 참았을까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머리카락을 기른다. 건강과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한 머리카락은 신화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예수의 발을 탐스러운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기를 거치는 동안 여성의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등이 여성성을 상징했다면 머리카락은 단연 건강을 상징한다. 반대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마음을 표현할 때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밀어버린다. 출가한 스님이나 성당의 수녀와 무슬림 여성이 가리는 머리카락, 말썽부리는 딸의 징계를 위한 처분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가채가 유행하던 시절엔 머리카락은 권력을 상징했다. 가채가 높을수록 여성의 위세가 표현되고 남성은 갓으로 대신했던 시절도 있다.

사회적 인간으로 활동하는 동안 머리카락은 중요한 듯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하게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았다. 살 빼는 것 만큼 어려운 `풍성한 머리카락 만들기'는 우리의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를 털고 자존심도 털어간다. 실은 나도 머리카락 신화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런 말을 꺼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실험으로 자연착상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태어나는 위대한 시기에 아직 획기적인 탈모치료제는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과학의 허당스러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라푼젤 인간형은 젊고 건강한 여성(남성)이 갇혀있는 온갖 사회적 유폐됨을 은유한다. 부모가 만든 성에서 보호와 빡빡한 양육 속에 머리카락을 기르다 이성을 만난다. 발칙한 만남이든 부모의 주선이든 중요하지 않다. 기운 센 머리카락을 타고 오르는 이성에게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헌신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라푼젤은 자신의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자랑으로 삼았지만 그것이 올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생각 없이 기른 머리카락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풍성한 머릿결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한 라푼젤이나 빈약한 머리카락과 서글픔의 나이 속에 진입한 내가 오버랩된다. 젊은 여성 라푼젤에게 사회가 원하고 부모가 바라는 머릿결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과거, 풍성한 머릿결로 살아 본 선배로서 생은 남 따라가지 않더라도 살아내기 기쁘고 즐거웠다는 고해성사 같은 경건함으로 말하고 싶다. 머리카락처럼 달려있던 나무의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인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대, 애쓰기보다 자신을 먼저 다독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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