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2.11.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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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일 년 농사일을 마친 10월 중순이면 마을 사람들이 남한 강가 천막 아래 멍석 위에서 천렵한다. 농사짓느라 쌓인 피로를 음식을 먹으며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긴다. 흐르는 강물 건너 야트막한 산, 물들어 아름다운 단풍에 나는 새들이 한껏 분위기를 돋운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리에 앉으니 풍성한 먹을거리가 식욕을 당기고, 웃음소리가 저마다 얼굴에 피어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노란 주전자를 들고 와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뽀얀 빛깔의 술이 보기만 해도 뭔지 모르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열여섯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로 `마시자'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단숨에 목으로 넘겼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것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은 맛이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술과 음식을 나누면서 이야기하느라 나이 어린 것들이 무얼 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강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가 하면, 주변을 거닐면서 익어가는 가을을 음미하는 이들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웃음이 많아졌다. 술을 한잔인가 두잔 더 마시고 나자,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아져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희미하게 보이는 등 몽롱해졌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갈 무렵 곤한 잠에서 깨어 보니 천렵은 끝나고 갑자기 뒤에서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신히 일어나 몇 발짝 걷다가 집을 향해 뛰었다. 집은 비어 있어서 조용한 가운데 들어섰지만,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겁이 났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혼이 날까 생각을 하니 숨을 제대로 쉬기도 어려웠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크게 잘못했다고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빌었다. 잠시 후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이도 어린 데 남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또 네 몸은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어쩌자고 그랬니. 앞으로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일이 없도록 해라.” 어리석은 내가 미웠다.

이튿날부터 집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웠다. 마을 사람들이 강변에서의 내 모습을 뭐라고 얘기할까. 무슨 낯으로 그들의 얼굴을 보아야 할지에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여를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다가 문득 담 넘어 바깥이 궁금했다. 이제 지금쯤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여 살며시 나가 동네 한 바퀴를 돌았지만 다행히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는 이는 없었다.

그날 이후 다시 술을 마시는 일은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잊은 채로 지냈다. 술은 참 묘하기도 했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음식이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지금은 술을 꽤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다가도 누가 술이 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무슨 술을 마실까에 솔깃해진다.

술을 마실 때는 종류를 따지지 않고 먹는데다 안주 또한 가리지 않는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술은 적당히 마시면 몸에 도움이 되지만, 과하게 먹으면 건강을 크게 해친다고 한다. 그런데도 조심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잘 지켜지지도 않으니 한편으로 걱정은 하자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술에 대한 경계심을 마음속에 지니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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