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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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11.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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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안동엘 갔다. 이응태씨(1556~1586)의 무덤에서 발견된 `원이엄마'의 애절한 편지는 구구절절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31세로 세상을 뜬 남편을 사모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돼 `조선 판 사랑과 영혼'으로 가슴 찐한 감동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하여 작심하고 안동으로 여행을 갔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읽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구절은 원이 엄마 편지 첫 부분을 풀어쓴 문장이다. 이는 1998년 4월 안동시 택지 개발 계획 진행 중 고성이씨 집안의 이름 모를 무덤과 함께 발견됐다. 412년간 무덤 속에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빛을 보게 된 이 편지는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곳이 있다기에 안동을 갔었다.

다음은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가 풀어 쓴 편지 전문이다.

원이 아버님께 올림--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이 편지에 나오는 병술년은 1586년(선조 19년)으로 임진왜란 6년 전이다.

편지를 받는 이인 `원이 아버님'은 고성 이씨 이응태(1556~1586)이며 서른한 살에 요절했다. 부인은 이 편지와 병든 남편의 쾌유를 바라며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를 남편과 함께 묻었다. 이후 450년이 지나고 1998년 안동시 정하동에 택지개발지구가 지정되었다. 개발을 앞두고안동 어느 문중에서 입향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덤을 파다가 `철성 이씨(고성 이씨의 옛 이름)'라 적힌 무덤을 우연히 발견하고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렸다. 곧이어 고성 이씨 문중 입회하에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조선 판 사랑과 영혼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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