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정치인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11.0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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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애도의 물결이 단풍보다 뜨거운 가을이 될 줄이야. 누가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주최 측도 주인공도 없는, 축제도 파티도 아닌 이 젊은이들을 누가 유인했을까? 가면과 코스튬을 입고 핼러윈의 날 유령이 이태원을 다녀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아무리 개연성을 열어놓고 산다고 하지만 그 좁은 거리에서 155명의 사망자와 152명의 부상자가 나올 줄이야. 애지중지 키운 자식의 사망 소식을 접한 유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하고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아들딸, 친구의 부재가 얼마나 클까?

고대 켈트족이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며 악령을 쫓는 제의에서 유래된 축제가 바로 핼러윈이다. 지금은 세계 젊은이들이 열망하는 축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기괴한 분장과 의상을 입고 집마다 다니며 `트릭 오어 트릭(tric or treat), 과자를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라고 외치면 집주인은 사탕이나 초콜릿, 사과 등을 아이들에게 준다. 가난한 이에게 나눔과 베풂의 의미를 둔 미덕에서 비롯된 풍습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현세를 일침이라도 가한 것일까?

이태원 사태로 피해자가 없는지 확인하라는 문자가 학교에서 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학생들이라 한국에 관한 관심이 참 많다. 주말이 되면 학생들끼리 삼삼오 짝을 지어 명소를 찾아다니는 터라 은근히 걱정됐다. 단체톡과 개인톡, 전화를 했는데 한 학생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 주위 학생들에게 문자를 보내도 모른다고 한다. 연락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한 시간 지나서야 선생님, “나, 괜찮아, 있어요” 한다. 한 시간이 참으로 긴 하루였다.

연락을 기다리는 내내 선생 마음도 긴장 상태인데 행방을 기다리던 가족과 연인,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지 지레짐작이 간다. 한국에 유학이나 여행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뜻밖에 자녀의 비보를 받았을 때 그 참담함 또한 얼마나 컸을까?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고 하지만 이번 사고는 누구를 탓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황당하다. 누가 초대한 것도,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다 보니 `어이없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이태원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주위 환경이나 분위기를 알 수 없다. 그저 외국인처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사고 현장을 지켜볼 뿐이다. 사고 현장과 가족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위로나 도움이 되지 못해 지켜보는 이로써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사건을 문제 삼아 오보나 유언비어,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무리가 나올까 염려스럽다.

지금 이태원이 복잡하니 가지 말라는 충고 어린 택시 기사의 훈담이나 한 명이라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애쓰신 분들, “여러분, 사람이 죽고 있다. 제발 도와 달라”는 경찰관의 애절한 외침도 무색하게 되었다.

애도 기간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특정인에 욕설을 퍼부으며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보려고 했다는 시민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민이다.

국정 감사 때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국회의원들은 자주 쓴다. 그렇다. 이제는 국민이 아니라 “국외에서 한국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정치인은 말할 자격이 없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이여 비난하는 자를 비난하자. 하루빨리 국민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안을 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나 사망자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는 잘 대처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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