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것, 아니쥬?
그까짓 것, 아니쥬?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10.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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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하강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적당히 시원하고 맑아서 단풍 들 시기가 조금은 늦어지겠다 여겨지기까지 했었는데 오늘 아침은 몰라보게 쌀쌀하다. 갑자기 수은주가 쑤욱 내려갔다. 일기예보 방송조차 외출할 때 두꺼운 옷을 챙기라고 안내하고 있다,

오늘은 괴산군수배 게이트볼대회가 있는 날이다. 11개 읍면 30여 개 팀 200여 명이 한 운동장에 모인다. 어떤 운동경기보다 선수들이 많아서 대여섯 개의 코트에 나누어져 토너먼트로 행해지는 경기는 하루 일정이 빡빡하기 마련이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경기, 여름이라면 몰라도 시월도 다 지난 마지막 주인 오늘의 아침 8시는 무척 춥고 어설프다. 꼭두새벽처럼 느껴진다.

새벽같이 일어나 게이트볼장으로 가서 선수들을 픽업해야 한다. 합승하여 읍내 공설운동장까지 나가야 하니 마음도 몸도 부산하기 마련이다. 회원들을 차에 태우고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안개가 담뿍 끼었다. 빗물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 차창의 우인도우브러쉬가 스스로 작동하며 시야를 넓혀준다.

여전히 안개 낀 길은 가시거리가 오리무중 속이다. 안개등을 켜고 속도를 줄인 채 조심스레 운전하여 운동에 이르자 이미 도착한 다른 지역의 선수들이 게이트볼장 여지 저기에 웅성웅성 흩어져 있다. 운동복 위에 외투를 껴입고도 덜덜 떨린다.

“운동장이 바뀌면 제 실력이 안 나오는 법, 잘 알쥬? 남은 시간 열심히 집중해서 연습합시다.” 서두르는 회장을 따라 운동장에 내려서지만, 스틱을 쥔 손이 떨린다. 게이트볼은 매우 예민해서 조금만 흔들려도 빗나가기 마련이니 연습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연습보다 먼저 속부터 다스려야겠구먼!” 스틱을 땅에 던지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면서 하나둘 운동장을 벗어난다. 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맞장구를 친다. “그럼 그럼, 어서어서 속부터 달래야지, 금강산도 식후경 이랬지야?”

게이트볼은 생각만큼 단순하지도 재미없지도 않다. 예민하고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하다. 마음대로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더욱이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묘미를 깨닫고 마니아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개중에는 늙은이들이 마지못해 하는 그저 그런, 그까짓 것이라 폄하하고 업신여기는 운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은 서울 가 본 사람보다 안가 본 사람이 우긴다는 말과 진 배 없다. 고까짓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시시하지 않다. 공을 맞히는 일,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을 믿는 집중력으로 온 힘을 다해도 빗나가는 공이 부지기수다.

오늘같이 추운 날은 손이 굳고 몸이 떨려서 더욱 빗나갈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승부욕이 활활 활화산처럼 불태워져야 이기든 말든 할 것인데 영 신이 나지 않는다. 자유총연맹 봉사단이 끓이는 커피포트 앞에 길게 장사진을 친 대열들과 포장마차에서 오뎅국물을 홀짝거리던 사람들이 시작을 알리는 요란한 마이크 소리에 일어나 천천히 각 읍면의 팻말 뒤로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선다.

개회사, 내빈 소개, 군수님 인사, 제발 짧게 짧게 건너뛰면 더 좋고, 그러나저러나 내년에는 제발 따뜻한 날 잡아서 경기하게 해주세요, 웅얼웅얼. 경기 시작 전 우리 군수님의 시구 모습, 스틱으로 빨간 공을 제1 게이트를 향해“탁”밀어칩니다.

“어라? 불통!” 심판원의 손이 내려집니다. 군 의회 의장님도 역시 제1번 게이트 <통과> 아닌 “불통!” 쉽지 않습니다. 멋쩍게 돌아서는 시구자들의 모습! 그까짓 것 아니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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