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병의 본고장 제천의 정체성 살리기
대한민국 의병의 본고장 제천의 정체성 살리기
  • 김명철 제천교육장
  • 승인 2022.10.2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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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제천교육장
김명철 제천교육장

“우리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이 말은 120년 전 제천의병들의 절규였고, 한결같은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시대정신과 시민의식의 발동이었다. 그리고 그 내면에 흐르는 인류애의 저력과 전통은 지금도 제천사람들에게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제천'은 예로부터'義'를 숭상하는 곳으로`의원(義原)'또는`의천(義泉)'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그리고`의향(정의로운 고장)'`을미의병 전쟁의 진원지',`남한강 역사문화 유적의 보고'등으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제천의병'은 제천을 비롯한 인근 4개 지역 즉, 제천, 청풍, 단양, 영춘에 지리적, 학문적, 혈연적 연고의 기반을 둔 한말 의병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시기에 따라 의병의 가담 지역이 때로는 영남, 강원, 경기지역, 나아가서는 서북과 해외에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항상 그 근거지는 제천이었으므로 제천을 의병의 고장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의병은 이후 독립운동으로, 광복 후 근대화 운동, 새마을 운동, 민주화 운동으로 그 정신은 시대정신의 근간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천이 의병의 성지로 인식되는 것은 유중교 선생과 유인석 선생이 이곳 제천에서 제자를 양성하였으며, 이 제자들 중심으로 자양영당이 있는 장담(長潭,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마을이 의병봉기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천의병들은 충주성을 점령하고 기세를 올렸으나 열악한 무기 등으로 전투에서 패하고 영월로 후퇴하자 유인석 등은 요동으로 가서 재기를 계획했다. 그러나 그 계획을 보류하고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의진을 수습하고 의병활동을 전개한 곳 역시 바로 이곳 제천이다.`격고팔도열읍'과`격고내외백관'을 전국에 포고해 봉기의 정당성을 천명하며, 양반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아 의병항쟁이 전 국민의 거사였음을 알렸다. 이후 평민의병장이 등장하며 의병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의병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한 군인이었다. 국가 사회로부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나라 사랑, 지역 사랑의 마음으로 분연히 일어나 생명을 바쳤기에 그 의미는 더욱 귀하다.

필자는 지난 9월1일자로 제천교육장에 부임한 이후 숭고한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의(義)로운 지역문화와 전통을 잇는 일을 학교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제천의 모든 아이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청 주변의 울타리에 무궁화를 150그루를 심어 교육청을 무궁화 동산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각급 학교에는 내년 봄 학교의 식목 행사를 무궁화동산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다.`무궁화 꽃길'이든, `무궁화 동산'이든 학교 형편에 맞게 나라꽃 공간을 만들고 교육 활동에 활용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아울러 제천시에도 내년 식목일 행사에 제천시민에게 나눠 줄 무궁화 묘목 14만 그루를 준비하도록 건의했다. 향후 3년 동안 1년에 14만 그루씩 무궁화를 심는다면 제천시는 무궁화 특별시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날 것이 분명하다. 의로운 도시, 나라 사랑의 대표적인 도시 제천이 무궁화 도시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다.

나무심기는 탄소 중립 실천과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학교에서 이 일을 먼저 시작한다면 나라 사랑과 환경교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 된다. 제천에서 시작된 120년 전 의병정신이 21세기 시대정신으로 부활해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중립 실천에 앞장서는 명실상부한 `자연 치유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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