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다큐멘터리, 그들의 생존방식
시장 다큐멘터리, 그들의 생존방식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2.10.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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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기록해 놓은 건 모두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지나온 시간만큼의 가치가 따라옵니다.”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두 살이 되던 해에 경기도 평택으로 와 살아온 사진가 이수연(69)이 사십여 년 가까이 보통사람들의 생활중심 시장을 찾아 카메라에 그 이야기를 담아 사진집으로 내놓으면서 한 말이다. 추억이 아련한 것은 그 장소에 갈 수 있어도, 그 시간에 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신념으로 기록의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시장사진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는 예술작품과 기록의 맥락이 이어지도록 가능한 많은 시장의 다양한 사진을 찍어 다큐적인 사진집을 이루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머물던 기억처럼 추억 사이사이에 깃든 우리네 삶이 시장 장터에 펼쳐져 있다. 더불어 길고 넓은 시장길 곳곳에 자리한 기준점의 위치에 따라 사진가가 절대적 가치를 추구한 사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보든 역사의 자취가 주는 숙연함이 느껴짐은 그 어떤 풍경 사진보다도 값지다. 그것은 곧 누구나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의식의 공통분모이고 지역문화의 집산지인 동시에 삶의 문화를 반영하는 곳이 시장이다. 하여 전통시장은 `한국인의 원형질'이자 생명활동의 기초이면서 정신의 기초를 이루는 단위의 의미라고 말한다.

1985년의 어느 시장에서 울긋불긋 전시된 꽃들을 고르는 여인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그의 사진집. 책장을 넘길 적마다 눈에 들어오는 물건에서 물건으로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데에서 사람 사는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어 정겹다. 자그마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빨래 걸린 집을 나서는 아낙네의 시장길과, 구부러진 허리임에도 등에 진 큰 짐보따리가 애처로워 보이는 고달픈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가 하면, 비바람에 펄럭이는 젖은 비닐천막 아래로 처량한 모습의 여인네와 인파가득한 시장길에 자리한 허름한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람들은 시장문화의 한 단면이다.

이렇게 시끌벅적 돌아가던 시장이 이슥한 밤이 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텅 비어 가고, 고요하게 잠들어 가는 것에서 채워지고 비워짐의 연속을 음미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서 만난 빈자리, 여유로움일 수도, 허허로움일 수도, 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단다. 사진에 사람이 들어 있지 않아도 그 사람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작가의 시선은 시장에서 나른함의 무게에 겨워 엎드려 눈을 붙이는 상인의 심정은 어떨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도 좌판에 오이 몇 개 올려놓고 조는 이의 심장은 또 어떠할지를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보여준다.

시장다큐 `그들의 생존방식' 사진집에 들어 있는 내용에는 도시 한복판의 시장과 변두리의 장터가 모두 한 묶음의 덩어리 안에서 온몸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소리들이 오래도록 추억과 기억 사이의 시장여행집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대도시주변의 시장들은 크게 활기를 띠고 있지만, 소도시 작은 마을의 시장들은 오전에 잠깐 반짝이다가 이내 사그라지고 만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거의 텅 비어 있기도 하니 사진가의 눈과 마음도 쓸쓸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가 기록해 놓은 전통재래시장사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진의 가치가 계속 생성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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