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아홉 젊은 아가씨
쉰아홉 젊은 아가씨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2.10.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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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통증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가 요란했었나보다. “아이고 어쩐댜. 어쩌다가 젊은 아가씨가 고관절을 부러트려 이 고생을 하는 겨” 할머니들이 혀를 끌끌 차시며 어쩐댜 아가씨, 아가씨 하는 바람에 병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간병 사님은 쉰아홉 나이에 아가씨소리 듣기 쉬운 일 아니라며 한턱내라고 추임새까지 넣으며 거들었다. 덕분에 우울했던 병실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통증도 잠시지만 멈춘 것 같았다. 그날부터 715호 입원실에서 내 이름은 아가씨였다.

할머니들은 내가 고통스러워할수록 시시콜콜 질문이 많아졌다. 어쩌다 다리를 부러트린 것인지, 무엇하다 넘어졌는지, 자식들은 몇이나 되는지 호구조사까지 해가며 통증으로 예민해진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 토씨 달 듯 꼭 한마디씩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아무래도 골다공증이 심한 가 벼” 이미 당신들은 뼈가 부러져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나이이며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은 성한 곳 없는 육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고관절이 부러져 인공 관절을 했으니 분명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렸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 했다. 담당의사도 넘어졌다고 고관절이 부러질 나이는 아니라며 할머니들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더니 골밀도 검사를 해보잔다. 하지만 입원 직전 종합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뼈 건강은 `양호'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다쳤으니 그날은 내가 운수 사나운 날이었던 게다.

코로나로 인해 병문안도 제한되어 모두 가족들 얼굴보기도 쉽지가 않았다. 입원해 있는 동안 할머니들이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었다. 다친 곳을 걱정하고 위로하며 빨리 완쾌되어 퇴원하기를 서로 응원을 하며 치료를 받았다. 병실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나는 할머니들의 잔소리를 귀에 달고 지내야 했다. 입맛이 없어 병원 밥을 먹지 못하고 남기는 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들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먹기 싫어도 잘 먹어야 뼈가 빨리 붙는다고 걱정들을 하셨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다리로 운동을 한다고 쩔쩔매고 있으면 금방 퇴원해도 될 것 같다며 부러움 반 안쓰러움 반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할머니들도 모두 뼈를 다쳐 나보다 먼저 수술을 하신 분들이다. 연로하신 탓인지 회복속도도 느리고 퇴원을 하신다 해도 집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가야 하는 형편들이었다. 어쩌면 그런 당신들 처지가 한스러울 만도 한데 그럼에도 오랜 연륜에서 터득한 지혜와 너그러움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그렇다고 날마다 좋은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병실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할머니들의 코 고는 소리는 기차소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심했다. 한 분은 주무실 때 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잠꼬대를 했는데 깜작 놀라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낮과 밤이 다른 할머니들 모습이 황당하면서도 신기하기도 했다. 때때로 빨리 퇴원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자식처럼 걱정해주는 따듯한 마음에 잠자는 시간쯤은 얼마든지 양보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차소리를 내며 밤새 코를 골아도, 천둥치듯 잠꼬대를 하셔도 그 안에는 할머니들의 오랜 세월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병실에 입원하던 날 나이 많은 할머니들뿐이라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싫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서 같이 생활하기 힘들 거라고 지레짐작한 나의 편견은 할머니들의 지혜로움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흔의 할머니들께 나이는 살아온 날들의 역사와 삶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숫자라는 것을 쉰아홉 젊은 아가씨는 제대로 배우고 퇴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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