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디자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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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서진 수필가
  • 승인 2022.10.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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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수필가
연서진 수필가

 

펌을 하고 싶다며 들어온 그녀의 머리는 방금 한 듯 강한 웨이브의 단발이다. 방금 한 펌을 왜 바로 또 하려는지 사정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일주일 전에 펌을 했는데 직장 동료에게 촌스럽다는 말을 연거푸 들어 몹시 기분이 상했다고 했다. 사실 자신은 머리 스타일에 예민하지 않아 그저 편하고 오래갈 수 있게 했는데, 이젠 거울 보는 것도 싫어진다면서 스타일을 바꾸어야겠다는 것이다. 동료들을 향한 섭섭함에 그녀의 심정은 지금 잔뜩 꼬부라진 상태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이 머리를 어떻게 바꿔주면 잔뜩 꼬인 이 마음은 부드러운 컬의 마음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지금이 바로 나만의 비법을 써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나는 이럴 때 쓰는 나만의 미용 레시피가 있다. 강한 펌을 펴 주면서도 머릿결은 윤기나는 나만의 재료를 혼합한다. 꼬불꼬불한 머리에 이 재료를 넉넉히 바른 다음 내가 원하는 컬의 모양을 상상하며 열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머리카락을 손질한다. 보통 펌 하고 달리 이 과정에서는 빨리 적당한 굵기를 확인하고 감아야 한다. 감고 보니 아직 상상한 그 모양이 나오지 않았다. 한 번 더 재료를 듬뿍 바르고 잘 만진 다음 머리를 감고 거울 앞에 앉았을 때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다. 내가 상상한 너무 꼬불거리지 않는 풍성한 컬의 머리로의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들어간다. 적당한 웨이브가 돋보이도록 자로 잰 듯이 정직한 단발머리에 층을 내주었다.

드라이기로 탄력 있는 컬로 말리고 마지막으로 에센스를 조금만 발라 윤기를 더해준다. 변신한 스타일처럼 거울 속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봄 햇살처럼 부드러워져 있다.

얼마 후 들른 그녀는 매우 행복한 얼굴이었다. 달라진 헤어스타일로 동료들에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나의 오랜 단골이 된 그녀, 어찌 보면 그녀의 머리를 지적질한 동료들이 예뻐진 그녀의 모습을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 아닐까 싶다.

나의 오랜 친구 중 유독 지적질을 잘하는 친구 A가 있다. 지난봄, 친구들과 당일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만나자마자 옷차림이 애들 같다면서 시작된 지적질은 비단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적당을 넘어서고 있어 급기야 참지 못하는 다른 친구 B와 작은 언쟁이 생겼다. 너나 잘하고 살라는 B의 말에 흥겨웠던 분위기는 소란해졌고 여행지 도착할 때까지 음악 소리만 차 안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설레던 마음은 운동화를 신었음에도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는 듯 여행하는 동안 불편했다.

`관심'을 받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나치거나 원치 않는 관심은 상대방에게 부담되기도 하고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이 상대의 외모를 지적하는 관심이라면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일정한 간격과 선이 있다. 선의 간격이 지나치면 간섭이고 오지랖이며, 적정한 선의 간격을 잘 지킨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간격의 선을 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착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간격의 선을 넘나들며 줄타기한다. 선을 지키는 것은 서로 하지 않아야 한다. 누구라도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이미 그 누군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말이란 입에서 나오는 즉시 뿌리를 내리고 생각의 꽃으로 피어나 끊임없이 잔상처럼 맴돌게 하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나의 직업을 단순히 생업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용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인 것처럼 나를 찾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통해 만족하고 웃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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