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박
가시박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10.04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강 위를 걷는다. 중앙탑 공원을 끼고 흐르는 남한강이다. 물 위로 놓인 다리 양옆은 강물이 찰랑인다. 철로 된 얼거리가 없다면 위험천만한 길이다. 물론 길은 그리 좁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리 밑 부분과 강물은 거리 차이가 거의 없다. 수변은 벌써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감도는 찬 기온에 식물들도 노랗고 빨갛게 물을 들이는 중이다. 떠날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멋진 모습이던가.

건너편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유난히 노랗게 빛난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황홀해하고 있는 중일까.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비는 그쳤다. 강 위로 내려앉은 박무 때문인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글 벗과 산책을 나왔다. 벌써 가을이라고, 세월이 이리도 빠르다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단풍으로 물든 수변 반대편은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잘 가꾼 골프장이 있고, 커피색 단층집이 수변에 자리 잡았다. 가정집인지, 아니면 사무실인지 모르겠지만, 골프장과 너무도 잘 어울려 보인다. 물안개는 어느새 골프장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중이다. 마치 유럽의 어느 한적한 시골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우리는 강 위를 벗어나 나무들이 노랗게 빛나던 수변 길을 걷는 중이다. 멀리서만 보아야 했을까. 노랗게 빛나던 나무의 실체를 맞닥뜨렸다.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가시박의 덩굴이었다. 주변 모든 나무들을 뒤덮은 가시박의 모습에 실로 말문이 막혔다.

가시박은 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줄기나 잎의 모양이 박과 같고 가시가 나 있어 `가시박'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귀화식물인 가시박은 번식력이 너무도 뛰어나 우리나라의 산야를 교란시키는 주범으로도 유명하다. 덩굴손이 얼마나 강하고 억센지 주변 식물들을 모두 가릴 판이다.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는 것은 칭찬을 해주어야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는 듯해 마음이 편치 않다.

분명 멀리서 보았을 때는 노랗게 빛나는 나무라며 아름답다 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이 허상임을 깨닫는다. 이런 경험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실망하고 아팠던 날이 적잖았다. 그래 가까이하기보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그렇게 살자 했다. <풀꽃>을 노래한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한다지만 때로는 예외는 있는 법이다. 물론 작고 하잘 것 없는 존재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시인의 말은 공감한다. 하지만 작게 보이던 그 무엇이 자신의 가슴에 깊은 가시로 박힌다면 선뜻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가시박도 처음에는 분명 작고 여린 새싹으로 시작했을 터이다.

길섶 나무들을 휘덮은 가시박을 자세히 보니 되알진 열매가 덩굴을 따라 꽤 많이 달렸다. 열매는 가시로 덮여 감히 만질 엄두도 내지를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자신을 지키려는 방법일까. 그래도 그렇지 넓은 잎은 다른 나무들을 타고 올라와 햇빛을 차단하고 급기야는 그 밑의 식물들을 죽게 만든다니 삶의 방식이 너무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삶이 존중받으려면 공생과 공존, 화합과, 조화가 있어야 하거늘 가시박에는 그러한 미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면 가시박도 사람들에게 한바탕 시달림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태계의 교란종이라 하여 뽑혀나간 선조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니 살아남기 위해 강하고 단단한 가시를 저리도 많이 만들어 냈으리라. 그럼에도 가시박의 정체를 알고 나니 산책길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나리와 벚나무, 심지어 키 큰 후박나무에도 가시박 덩굴은 주렁주렁 매달렸다. 게다가 노랗게 물든 잎들은 가을바람에 아늘아늘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마치 우리를 비아냥대듯이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