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밤
추석날 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10.0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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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 하면 달이고, 달하면 추석이 떠오른다.

맑은 가을의 대표격인 중추절 밤에 둥실 떠오른 달만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행복감을 나누어 주는 존재는 또 없을 것이다. 세상천지 어디서든 날씨가 맑기만 하면 볼 수 있는 보름달이다 보니 이에 대한 감회는 사람마다 다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唐)의 시인 이교(李嶠)도 추석날 밤 떠오른 보름달을 보고 나름의 감회에 빠졌다.


추석날 밤(中秋夜)

圓魄上寒空(원백상한공) 둥근 달이 차가운 하늘에 떠오르는데
皆言四海同(개언사해동) 모두들 온 세상이 같으리라 말하네
安知千里外(안지천리외) 천 리 밖 일이야 어찌 알리오마는
不有雨兼風(불유우겸풍) 비가 내리면 겸해서 바람도 불지 않던가


가을 초엽에 추석이 닥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가을의 중간쯤에서 추석을 맞는다. 그래서 추석을 중추절(仲秋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시인이 어디에서 추석을 맞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고향 집일 수도 있고 타향의 거처일 수도 있다. 보통은 타향에서 추석을 맞게 되었을 때, 하늘에 뜬 달을 보고 고향을 떠올리곤 한다. 시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벼슬살이가 됐든 나그네 신세가 됐든, 타향에서 추석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추석날 밤 본 달은 고향 집에서도 보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두 사방 천지 어디서나 추석 보름달은 똑같이 보인다고 말 할 리가 없을 것 아닌가?

시인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려 자신의 뜻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천리 밖의 모습을 어찌 아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시인이 준비해 둔 대답이 있다. 비가 오면 겸해서 바람도 불지 않던가? 추석날 밤 어디서나 보름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세상 이치이니 따지지 말라는 뜻이리라.

달은 사람을 포함해서 어느 것도 차별하지 않는다.

특히 추석날 밤에 떠오른 보름달은 더욱 무차별적이다. 타향도 없고 고향도 없다. 산도 없고 물도 없고, 너와 나도 없다. 타향에서 맞는 추석을 맞는다고 해서 쓸쓸하게 느낄 일이 아니다. 하늘에 번쩍 떠오른 보름달이 곧 고향 집이고 가족이고 친구이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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