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향기
숲 향기
  •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 승인 2022.09.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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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푸른 향기를 마시고 싶어 산에 올랐다. 입구에 들어서니 관리인 부부가 나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하늘을 향해 수십 미터 곧게 뻗어 오른 편백나무가 골짜기마다 울창하게 자랐다. 설명을 듣는 중에 아뿔싸! 누군가 포옹! 방귀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숲 속에서 제법 크게 울렸다.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이내 침묵이 흐르고 모두들 의아한 눈초리들이다.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모습을 본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유해 화학물질을 분해하는 효과와 탈취 효과가 있어 냄새를 잡아준다는 것이다. 편백나무 숲을 걷는 길은 상쾌했다.

숲에서는 항균작용을 하는 피톤치드가 나온다. 살균 작용이 뛰어나고, 내수성이 강해 물에 닿으면 고유의 향이 진하게 퍼져 잡냄새도 없애준다. 집 먼지 진드기가 번식하지 않도록 막아주고 억제해주는 효능이 있다. 침엽수 계통의 나무에서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수치가 가장 높다. 죽은 목질부보다는 살아있는 가지나 잎에서 피톤치드가 더욱 많이 나온다.

민주지산자락 중부권 최고의 힐링 휴식공간인 숲이다. 기온 변화가 심한 내륙 지방인 영동에 편백나무 숲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울창한 산림 속에 좌장을 하고 명상에 잠기니 신선이 되어 꿈길을 걷는 기분이다. 삼림욕으로 상쾌한 힐링의 시간을 가지는 호사를 누렸다. 땀을 흘리고 나서 차가운 냉수를 마시는 것처럼 오장육부가 시원하다.

산책길을 따라 황토 방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탁 위에는 산나물과 야채들이 올라왔다. 모두들 향긋한 냄새에 취해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편백나무 숲을 가꾼 산지기의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 일본을 방문했던 할아버지는 편백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단다. 향기가 좋고 부패가 잘 안 되어 건축 내장제로서는 으뜸이다. 무엇보다도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며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산림청을 찾아 조림계획을 말했다. 지원을 요청했으나 일교차가 크고, 겨울 날씨가 추운 산간지역에서 자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나 꾸준히 산림청 관계자들을 설득해 편백나무를 지원받아 조림을 시작한 것이다.

“저 사람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따뜻한 기후에 잘 자라는 나무를 우째 이런 산골짜기에 심는고.”

마을 사람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산지기의 우직한 고집은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계곡마다 끊임없이 묘목을 심었다. 죽으면 또 심어 가꾸기를 거듭했다. 6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기까지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생기고 손톱이 망가지는 쓰라린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넘어지고 바위에 부딪혀 무릎은 검푸르게 멍든 것이 부지기수였다. 다른 농사처럼 그해 추수할 곡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나야 목재를 만들 수 있는 나무심기를 묵묵히 해낸 것이다. 천만산 기슭 사유지 20여㏊에 군락을 이룬 백두대간의 편백나무 숲이다.

내륙 산간지역에 자리 잡은 편백나무 숲은 고씨 집안 삼대가 가꾸며 지켜오고 있다. 80여년을 가꾸며 관리해 온 숲의 혜택은 무한하다. 100년이 된 편백나무는 일본의 도요타 차 한 대 값에 이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자산이 됐다.“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고 하는데 고옹 산지기는 값으로 셀 수 없는 백년대계 편백나무 숲과 향기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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