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를 찾아가며
전문의를 찾아가며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9.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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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전화가 왔다. 동네 친구인 이 여사의 전화였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가고 싶은데 차를 좀 태워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많이 아프냐고 묻자 심히 아픈 것은 아니라고 얼버무린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하려다가 말고 어디서 만날까를 물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 내게 부탁을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양제라면 가까운 의원으로 가면 되겠지 했는데 그녀는 먼 곳의 전문의를 찾아가자는 것이었다. 예뻐진다는 주사와 함께 자글자글한 주름을 없앨 심산으로 나의 친지인 의원에 데려다 달라는 것이어서 나는 그녀를 데리고 병원을 향했다.

그녀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나이보다 젊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70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 여사.

노인대학과 문화원을 오가며 열심인 그녀는 이제야 살맛 나고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마음이 쓰이는 것은 오직 함께 공부하는 같은 또래의 송 여사 김 여사가 열 살쯤 아래로 보여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요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송 여사와 김 여사처럼 젊어 보일까 하는 것. 그래서 내게 어려운 부탁까지 했다고 털어놓는다.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고 문화원 선생님이 물었어요.

생각해보니 지금이 가장 행복하데요? 그렇게 말했지만 웃고 마는 거예요. 내 몰골을 보면 누구라도 거짓부렁이라고 할 것 같긴 해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손 댈 수 없다고, 늦었다고만 하지 말아야 할텐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한다.

“좋은 사람이라도 생겼슈?

“에이, 무슨!” 입을 가리고 손사래까지 치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한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어른들과 함께 살면서 알코올중독에 손버릇까지 나쁜 남편 때문에 얻어맞고 살다가 죽으려고 농약을 입에 털어 넣기까지 했다는 소문을 진즉 들어서 알고 있기에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 칭찬해줄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곤 했었다.

이 여사뿐이랴. 갈 곳이 오직 한 곳만 남았다고 서글퍼하는 다 늙은 여인들은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을망정 이 여사 못지않은 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나를 의식하고 나를 내세우며 산 여인이 몇이나 있을까?

<나는 여자가 아니다. 어머니일 뿐이다>고 수없이 되뇌면서 자신을 달래며 산 나의 지난날도 입맛이 쓰기는 매한가지다.

가난한 나라,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의 굴레가 어깨를 짓누른 그 많은 세월 속에서 그나마 어머니로 살아낸 것은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원수 같던 사람 저세상 가고, 아들자식들 그럭저럭 제 몫을 다 하기까지 죽지 못해 산 세월이 인생 전부라는 이 여사. 얼굴이란 살아온 내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름의 인생 지도 같은 것이다.

이제야 바꾼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80이 되어도 여자는 여자인 것을. 자신보다 더 젊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이웃들과 견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닌가?

책임도 의무도 훨훨 벗어던진 이제야 겨우 살 만해진 그녀, 복지회관이며 문화원을 돌면서 서예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노래 교실에도 다니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여간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70을 훌쩍 넘기고서야 자신을 가꾸려 바빠하는 이 여사.

“좋아요” 엄지 쑥 올리며 위안의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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