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 속의 문화유산
우리 생활 속의 문화유산
  •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2.09.18 1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바람이 선선해지고 저녁 해가 짧아졌다. 코로나로 인한 탓일까.

예년에 비하면 가을하늘이 무척이나 더 높고 청량하다. 지금은 명절의 의미가 많이 옅어졌으나 아직도 명절엔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많다.

매번 명절 차례 때에나 조상님에 대한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집 안팎을 돌아보면 조상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물건들을 찾게 될 수도 있다.

먼 조상님들의 문서나 물건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장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물건들조차도 어쩌면 생각보다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문화유산의 범위는 넓다.

시간적으로도, 분류상으로도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2005년부터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 개선을 위해 연구와 논의를 진행해왔으며, 지난 1월 개선안을 마련해 공론화와 합의를 추진했다.

지정문화재 중심에서 비지정문화재와 역사문화 자원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보호체계로의 정책전환과 함께 `국가유산기본법'을 제정하여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질 계획이다.

이러한 정책변화가 이루어지면 우리 주변의 역사적 의미와 이야기를 가진 비지정문화유산들 역시 그 가치를 재고하게 될 것이며, 특히나 유산 자체의 물질적 가치보다 그것이 가진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이 담긴 것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도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반닫이에 있던 옛 화폐들과 문서, 물건들을 간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질 때가 있다.

사실 처음엔 그것이 옛 물건이기에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건들에 담긴 이야기들이 사라져버린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에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움이 든 것이다.

문화유산은 오래된 것이어야만 한다는 선입견도 이제는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새로이 생겨나는 박물관들은 더욱 더 그 주제와 오브제가 다양해졌고,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근대의 생활물품, 전문 테마 등으로 전시 방향을 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만화박물관이라는 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 보던 엄청나게 두꺼운 만화잡지가 전시되어 있어 매우 반가웠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내가 기억하는 시대의 물건조차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스럽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시가 가능한 이유 역시 사람들이 만화책에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겪은 이들은 당시를 떠올리고 격세지감을 느끼며 후세대의 이들은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유산을 통해 체험하며 신기해한다.

또 이런 물건들은 같이 관람하는 세대들을 아우르고 서로 소통하게 해 주기에 낯선 고대의 유물보다 가치 있는 부분도 있다.

낡은 물건쯤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이야기를 품고 문화유산으로 대접받고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한번 살펴보자.

할아버지 장롱 속의 오래된 물건도 좋고, 창고에 먼지 쌓인 부모님의 옛 학용품도 좋다.

대단한 문화유산이 되지 못할지라도, 우리 집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우리 집 문화유산으로서는 1호가 될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