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습관 하나쯤 곁에 두고
오래된 습관 하나쯤 곁에 두고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2.09.15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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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창문 밖 길 건너 푸릇푸릇 보리밭 위로 봄이 오던 때 고대하던 소식을 받았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실시하는 국고 보조 사업 문화예술육성지원 문학 분야에 내 이름이 선정되었다.

그날은 충주에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차 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기뻐서 나도 몰래 어깨를 들썩이며 고래처럼 춤을 추었다.

누군가는 서너 번은 신청해야 겨우 선정이 된다는데 단 한 번 만에 이런 경사를 맞다니 꿈을 꾸고 있다면 깨고 싶지 않은 꿈 같았다.

지난 2017년도에 등단을 하고 매주 글을 배우는 수필교실을 다니며 꾸준히 습작을 이어왔다.

글 당번이 돌아오면 하루 정도는 어스름 남빛 새벽이 올 때까지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해마다 각종 문예지에 원고를 내느라 분주한 날들도 많았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모여 어느새 책 한 권을 묶을 분량이 되었다니 감개무량하다는 뜻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인 듯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벚나무 가지가 봄을 서두르던 몇 해 전, 하루가 열흘처럼 길던 그 어느 날에 스치듯 우연히 수필교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날의 첫 마음을 기억한다. 퇴근하고 십 분 정도를 걸어 수필교실을 찾아가는 동안 꽃샘추위가 손등에서 얼굴로, 다시 머리를 지나 마음속까지 오르락내리락 스며들던 삼월의 쌀쌀한 저녁이었다.

강의실 앞에 도착해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이 문을 열 것인가,

뒤돌아 나올 것인가. 가슴에 콩닥콩닥 널뛰기를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 찰나적으로 지나가는 갈등이었다.

결국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나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매주 화요일 저녁 집 근처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교실에는 수필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이 계시는데 항상 하시는 말씀이 등단 후 5년이 되면 책 한 권은 꼭 출판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늘 그림자처럼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래! 열심히 글을 써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따뜻한 책 한 권을 내고 열심히 살았다는 징표로 삼아야지” 나약하고 나태해질 때마다 스스로 채근하며 다독이다 그 뜻은 올해에 정점을 찍고 마음은 비로소 현실로 이어졌다.

고대하던 선정 소식을 접한 뒤로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계획표를 세웠다.

책 제목부터 목차를 고민하고 출판사를 계약하며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봄은 왔는지, 꽃은 피었는지, 절기는 잘 흘러갔는지 돌아볼 틈 없이 한 계절을 보냈다.

오랜만에 열정을 다해 살았던 시간인 듯하다.

책 출간이 무사히 끝이 났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따끈따끈한 신간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나는 이제 유년이라는 고치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비상을 할 때임을 자각하려 한다.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게으름 피우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내게 각인시킨다.

지난 몇 달 동안 입술이 부르트고 밤잠을 설쳐 눈가는 빨갛게 토끼 눈이 되었는데 그 모든 시간이 쓸모없지 않은 결과인 듯 잘 지나온 날들이어서 참 좋다.

매월 월급날이 되면 인터넷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신문사에 기고할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한 줄 한 줄 문장마다 공을 들이며 하루쯤은 밤을 낮처럼 새벽을 맞는 삶이 참 좋다.

그렇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오래된 습관 하나쯤은 여전히 곁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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