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반같이 둥근 달은 매일 뜬다
쟁반같이 둥근 달은 매일 뜬다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2.09.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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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덕분에 조상님 행복하셨다. 이제는 당신이 행복할 시간.”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의 단체 대화방에 현수막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이번 추석에 마지막 차례를 지내기로 했다며 그동안 차례 지내느라 고생한 어머니에게 현수막을 만들어 드렸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몇 해 전부터 시가에서도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억하며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는 것으로 추석을 보내고 있다.

가족들이 별로 손대지 않는 전이나 나물은 빠지고 너나없이 좋아하는 불고기와 잡채가 추석날 밥상 센터를 차지한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목청을 높이고 왁자하게 웃는다. 거리두기며 모임 인원 제한 없이 마음 편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시가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곧장 엄마를 뵈러 간다. 친정에서는 훨씬 전부터 제사와 차례를 생략하고 있지만 엄마는 추석 명절음식만큼은 잊지 않고 해두신다.

햇곡식을 빻아 빚은 송편을 솔잎으로 쪄내고 두어가지 전에 도라지와 고사리 나물도 빠트리지 않는다. 엄마에게 명절음식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계절에 맞게 챙겨먹는 제철음식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짐 되지 않는 삶을 인생의 좌우명처럼 여기는 분이다. 딱 하나, 자식들이 챙기지 않으면 서운해 하는 날이 있는데 바로 복날이다. 다른 날은 몰라도 복날에는 이열치열 뜨거운 음식이나 시원한 콩국수를 엄마와 함께 먹곤 한다.

가을 기운이 고개를 땅 밖으로 내밀었다가 여름 더운 기운에 놀라 바짝 엎드린다는 복날에는 더위를 이겨내는 복달임을 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에어컨과 냉장고가 더위와 대신 싸워준다고 해도 자연이 내어준 음식의 지혜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니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들도 그저 제철 제격인 것이다.

이번 추석에 엄마는 콩국수를 내오셨다. 처음보는 엄마의 추석맞이 음식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절기에 어울릴 법한 음식인데 말이다.

아침부터 콩을 불려 삶고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 갈아 콩물을 만드느라 오전 내내 분주하셨겠다. 바쁜 여름을 보내고 약해진 잇몸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느라 먹는 것이 시원찮은 딸을 위해 준비한 엄마의 명절음식이다. 코로나 확진 이후 부쩍 기운 없어하는 엄마에게 음식 준비 말라고 그렇게 성화를 했는데…. 자식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코로나도, 명절도, 자연의 섭리도 이기는 모양이다.

올 추석 보름달은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라고 한다. 보름달은 해와 지구, 달이 일직선이 되어 달이 태양 빛을 완전히 받아 앞면이 모두 드러날 때 뜬다. 통상 음력 15일에 보름달이 뜨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달이 지구 주변을 타원 궤도로 돌기 때문에 실제 보름달이 뜨는 시간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올해 추석엔 달이 뜨는 시각에 달과 지구, 태양이 일직선이 되어 가장 완벽한 보름달을 보게 된 것이다. 달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둥근 모습이었을텐데 우리는 추석날 쟁반같이 둥근 달을 100년 만에야 본다.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었을 엄마인데 콩국수를 그릇에 담는 엄마의 손이 참 오랜만에 눈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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