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이장님,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2.09.07 2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도시지역의 통장의 역할이 그렇듯이 산촌과 어촌을 포함한 농촌마을의 이장(里長)의 역할은 매우 지대합니다. 지방의원을 경유하기도 전에 정부와 주민을 잇는 다리이면서 뉴스 말고 주민들이 지역을 보는 창의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는 마을 사정을 아주 잘 알아 마을을 대표하는 오랜 토박이가 이장을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곳곳의 마을에는 퇴직한 지식인들이 귀촌하면서 원주민이 아님에도 이장이 되는 경우가 많고, 부지런하고 꼼꼼하신 여성 이장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어 신선한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법률사무실이 소재한 지방변호사회 소속이지만 전국 어느 지역의 사건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충북에서는 당연히 청주에서의 사건 수요가 가장 많지만 사건 유형과 발생지역을 예측하기 어려워 변호사가 원하는 지역과 사건의 유형은 별로 없습니다. 당사자가 많을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에, 제가 최근에 수행하고 있는 軍 사건이나 마을분쟁 사건은 상당히 애를 먹습니다. 제가 알고 있거나 수행하고 있는 마을분쟁지역은 청풍명월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두 1등을 다툴만큼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는 산골마을들입니다. 그러니 시골도 사람들이 기대하는 시골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한 마을분쟁의 한가운데 이장이 있습니다. 이장이 문제를 방치하고 마을의 중재자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위 산골마을들은 대다수 주민들이 이장의 형사책임을 물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경우입니다. 씨족세력의 집성촌에 오랜 토박이들인 원주민들은 고령화로 점차 줄어들고, 귀촌하거나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원주민들과 충돌을 빚습니다. 고소전(告訴戰)이 난무합니다. 명확하게 세력이 분리됩니다. 이로부터 무혐의를 받은 것이 있으면 다시 무고죄로 고소하게 됩니다. 많은 사건들은 민사와 형사사건의 성격이 같이 있어서 소송만능주의가 극대화됩니다. 누군가 마을을 떠나거나 귀천(歸天)해야만 해결될 정도로 마을주민들은 오랜 기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갈등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오게 됩니다.  
 이장이 갈등의 한가운데 있고, 자력구제(自力救濟)가 불가능한 시대에 주민들은 결국 법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법에 호소하는 많은 피해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준사법기관인 수사기관과 법을 적용하는 법원의 분쟁해결기능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같습니다. 성급한 검·경 수사권 조정이 부른 사건의 적체와 지체는 다시 법원에서의 최종 판단을 늦추게 합니다. 꽤 시간이 소요된 나름의 공권력의 판단이지만 피해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불복(不服)을 불러 주민들의 행복추구권은 무색해집니다.     
 지방자치법상 가장 하부의 행정기구는 읍·면·동입니다. 실제 그보다 더 하부의 통장과 이장으로부터 풀뿌리민주주의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장 등의 법적 지위는 지방자치법과 같은 법률에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장 등의 지위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 자치법규에 두고 있습니다. 법치주의의 가장 중요한 법형식은 법률이므로, 법률에 그 근거를 두어야만 이장 등의 책임을 더 분명히 하여 주민자치를 발전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장 등의 지위를 이권의 개입이나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남용한다면, 지방자치의 가장 뿌리이자 주권자인 주민들의 행복이 흔들릴 것이니 어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가 가능할까요. 당장이라도 지방의 군(郡)지역이 소멸되는 것을 우려해야 하는데, 싸움판인 마을 때문에 집을 나서기가 두렵다면 공권력부터 밑바닥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장님, 독불장군 아니니까 주민들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