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연화지에서
느릿느릿 연화지에서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2.09.06 1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가을은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기온이 아침저녁으로 뚝 떨어졌다. 구월로 들어서면서 하늘도 더 깊고 푸르게 하얀 구름을 띄우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여름내 주말까지 쉬지 못해 심신이 지쳤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비산리 농막으로 향했다. 코로나 시기에 갈등하던 마음을 다스리던 곳이다. 나의 신혼과 아이들의 성장기를 함께 하던 집을 팔면서 허전함을 채우려고 몇 년 전에 남편이 마련했다. 오래 살아 정들고 삶의 흔적이 있는 고향이다. 계절마다 다른 풀벌레 울음과 산빛이 하늘과 잘 어울린다. 뒤편 창문으로 지장보살이 미소로 화답하는 평온한 시간이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지 않고 중생들을 구원하러 보살상으로 남았다. 지옥문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중생이 백팔 참회를 통해 다생겁래多生劫來의 업장을 없애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높이 108척(41m)으로 동양 최대이다. 여름밤 불빛이 비치는 지장보살 주변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어두운 밤길을 올라 사슴벌레를 잡고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사월초파일은 등을 달아 두고 가족의 무사함과 건강을 기원한다. 미타사를 오르며 가을은 가을이다. 뜨거운 여름 한낮의 기온이 아침저녁으로 뚝 떨어졌다. 구월로 들어서면서 하늘도 더 깊고 푸르게 하얀 구름을 띄우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같은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여름내 주말까지 쉬지 못해 심신이 지쳤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비산리 농막으로 향했다. 코로나 시기에 갈등하던 마음을 다스리던 곳이다. 나의 신혼과 아이들의 성장기를 함께 하던 집을 팔면서 허전함을 채우려고 몇 년 전에 남편이 마련했다. 오래 살아 정들고 삶의 흔적이 있는 고향이다. 계절마다 다른 풀벌레 울음과 산빛이 하늘과 잘 어울린다. 뒤편 창문으로 지장보살이 미소로 화답하는 평온한 시간이다.

지장보살은 부처가 되지 않고 중생들을 구원하러 보살상으로 남았다. 지옥문에서 중생을 제도하고 모든 중생이 백팔 참회를 통해 다생겁래多生劫來의 업장을 없애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높이 108척(41m)으로 동양 최대이다. 여름밤 불빛이 비치는 지장보살 주변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어두운 밤길을 올라 사슴벌레를 잡고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사월초파일은 등을 달아 두고 가족의 무사함과 건강을 기원한다. 미타사를 오르며 일주문 너머로 지장보살이 보이면 두 손을 자연스레 모아 합장한다. 이 길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든 상관없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든든하다. 특히 오르막 왼쪽에 조성된 연화지를 가장 좋아한다. 오가는 길목에 자리한 좋은 쉼터다. 연꽃이 피고 지는 시기와 상관없이 주변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정감이 가는 이유 중에는 내 닉네임이 연꽃인 것도 있다. 음식으로 즐겨 먹는 연근조림부터 연잎밥은 물론 꽃과 잎을 차로 마시기도 하니 버릴 것 없는 수생식물이다. 게다가 연꽃의 씨앗인 연밥으로는 염주를 만든다.

굽어진 산길을 더 가면 왼편으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 보인다. 민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높은 머리 묶음과 부피 있는 네모난 얼굴, 눈·코·입이 뚜렷하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주름은 사선으로 흐르며, 오른손은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들어 가슴 앞에 댄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 거구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바위에 스며든 부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근심을 덜어낸다. 아스팔트 길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극락전’이 보인다.

주불전인 극락전 앞에는 6각 3층 석탑인 대광명 사리탑이 있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며 탐방 중이다. 미타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니 주변의 수려한 명소를 찾게 되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보인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짧은 문장은 자연이나 사람에게도 통하는 진리다.

잠시 숨을 고르며 연화지에 들른다. 아무 생각 없이 꽃이 지고 난 자리를 바라보니 고요함이 밀려든다. 일상의 소음과 멀어지니 여유가 생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빈틈없이 종종거렸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함께 사는 이에게로 쏟아지며 상처를 주었다. 내적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가장 최선임을 알면서도 지나쳤다. 물끄러미 수면 위 연잎과 이름 모를 벌레를 바라본다. 세상일이 마음 하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저녁 어스름 흐린 노을빛도 아름답다.

일주문 너머로 지장보살이 보이면 두 손을 자연스레 모아 합장한다. 이 길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든 상관없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든든하다. 특히 오르막 왼쪽에 조성된 연화지를 가장 좋아한다. 오가는 길목에 자리한 좋은 쉼터다. 연꽃이 피고 지는 시기와 상관없이 주변에 앉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정감이 가는 이유 중에는 내 닉네임이 연꽃인 것도 있다. 음식으로 즐겨 먹는 연근조림부터 연잎밥은 물론 꽃과 잎을 차로 마시기도 하니 버릴 것 없는 수생식물이다. 게다가 연꽃의 씨앗인 연밥으로는 염주를 만든다.

굽어진 산길을 더 가면 왼편으로 자연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이 보인다. 민머리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높은 머리 묶음과 부피 있는 네모난 얼굴, 눈·코·입이 뚜렷하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주름은 사선으로 흐르며, 오른손은 밑으로 내리고 왼손은 들어 가슴 앞에 댄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 거구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다. 바위에 스며든 부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근심을 덜어낸다. 아스팔트 길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신 `극락전'이 보인다.

주불전인 극락전 앞에는 6각 3층 석탑인 대광명 사리탑이 있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며 탐방 중이다. 미타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니 주변의 수려한 명소를 찾게 되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보인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잠시 숨을 고르며 연화지에 들른다. 아무 생각 없이 꽃이 지고 난 자리를 바라보니 고요함이 밀려든다. 일상의 소음과 멀어지니 여유가 생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주일을 빈틈없이 종종거렸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자연스레 함께 사는 이에게로 쏟아지며 상처를 주었다. 내적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가장 최선임을 알면서도 지나쳤다. 물끄러미 수면 위 연잎과 이름 모를 벌레를 바라본다. 세상일이 마음 하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별반 다를 것 없는 저녁 어스름 흐린 노을빛도 아름답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