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 1일을 기억하며
1898년 9월 1일을 기억하며
  •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 승인 2022.09.0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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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미국의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여성의 역사는 여성 삶을 변화시킨다. 여성의 과거 경험에 대한 짧은 접촉이더라도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1898년 9월1일, 서울 북촌에 살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소사, 김소사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서인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발표했다. 
“슬프도다. 전일을 생각하면 사나이가 위력으로 여편네를 압제하려고 한갓 옛글을 빙자하여 말하되 여자는 안에 있어 밖을 말하지 말며 술과 밥을 지음이 마땅하다 하는지라” 이 선언이 124년전의 현실만은 아니기에 우리는 여권통문의 날을 기념하고 기억한다 
‘우리 사회에 여성이 여성이기에 겪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거리에 나와 외치는 무수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더이상 구조적성차별이 없다’는 말의 힘에 지워진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말한마디와 여당 원내대표의 말한마디로 우리사회에 성차별은 없으며 성평등 사업은 자기돈으로 해야 하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한가지이다. 우리 사회가 완전히 평등한가요? 이 정도면 살만하다는 말은 차별이 사라졌다는 말의 의미가 아니다. 제법 평등해졌고 많이 나아졌지만 ‘이제 평등하다’는 말은 차별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완전한 성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길에 서있다. 과거로부터 조금은 좋아진 현재에, 그리고 더 좋아질 미래와 완전한 평등의 날이 오는 그날까지 여성의 말로, 투쟁으로, 기록과 기억으로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간다.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우리의 현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능동적 과거이다. 현재의 의미는 과거의 기억된 수많은 서사들이 겹겹이 쌓여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겨진 자들이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의 윤리적 선택은 때로 더 큰 저항이 될 수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세계를 똑같이 공유해왔고 세계의 모든 경험의 반은 여성들의 것이다. 사회는 체계적이고 성실하게 여성들의 말과 경험을 지우려 하나 우리는 끈질기게 기억하고 연결하고 구성한다. 
전쟁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졌던 참혹한 폭력과 침묵을 깨고 세상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친 위안부피해자 할머님들, 그들과 연대했던 시민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활동가의 주먹밥과 가열찬 가두시위, 시체염 등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 급속한 경제성장의 열매에 잊혀진 여성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협소한 자유와 삶의 공간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연대한 수많은 삶의 이야기.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사회에 여성혐오범죄의 개념을 비로소 인식하게 했다. 
‘평소 여자들이 날 무시했다’며 여성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자행한 이 사건이 발생하자 일상이 불안했던 청년 여성들은 한 공간으로 모여 추모하고 애도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6년이 흘렀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이제 잊으라고! 과거만 붙들고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냐고” 하지만 이는 6년전의 흘러간 사건이 아니다. 인하대 캠퍼스내 성폭력 살인사건을 보라. 우리 사회는 여전히 너무 많은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2018년 개인의 피해경험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이 여기저기 봇물처럼 터져나올 때 개인의 발화는 이미 사적인 것을 넘어 비로소 우리의 경험이 되고 현재를 재구성하는 ‘사회적 변혁운동’이 되었다.
우리는 이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1898년 9월1일 124년전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과 노동권을 외친 그날의 함성은 오늘 더 큰 북소리가 되어 “누구도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 “더이상 여성을 죽이지 마라!” “구조적성차별은 여전히 있다”는 함성으로 울려 퍼진다.  
사회가 여성의 경험과 시간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축소시키며 짐짓 모른체하더라도 우리는 그 과거의 고통과 투쟁과 연대하며 그 경험을 현재화한다.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그 기억은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다시 말해 ‘기억공동체’이다. 완전한 성평등사회를 위해 애썼던 여성들, 애쓰는 여성들, 고통의 역사에 대한 ‘위험한 기억하기’를 수행해야 한다. 기억은 고통받는 타자와의 연대이며 오늘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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