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빛과 그림자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8.31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치과의사이자 색소폰연주자였던 길옥윤(본명 최치정)은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작사가이며 작곡가입니다. 그가 작사 작곡한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 주옥같아 패티킴을 비롯한 최희준, 혜은이, 남진, 쟈니리, 이시스터즈, 김연자 등 걸출한 가수를 배출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몸살을 앓던 격동의 시기에 그의 노래는 고단한 민초들에게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청량제였습니다. 필자도 그의 세련되고 우아한 곡들에 매료되어 한세월 즐겨 듣고 흥얼거리며 살았는데 1967년 홍콩에서 발표한 `빛과 그림자'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그의 아내였던 패티킴과 중후한 저음가수 최희준이 불러 크게 히트한 곡인데 가사가 음미할수록 맛깔스럽고 울림이 있어서 입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사랑은 행복이자 불행이고, 천국이자 지옥이며, 사랑하는 마음은 빛과 그림자라는 사랑의 이중성을 절묘하게 그린 절창입니다.

그렇듯 오묘한 게 사랑입니다. 사랑만 그런 게 아닙니다. 빛과 그림자로 점철되어 있는 게 바로 우리네 인생살이 이고 세상살이입니다. 사랑해서 행복했고 사랑해서 불행했듯, 사랑이 천국일 때도 있고 지옥일 때도 있듯 모든 인연들과 모든 인과들에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좋음이 있으면 싫음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습니다.

아무튼 빛은 밝고 그림자는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빛은 광명이고 희망이며 그림자는 암흑이고 절망입니다. 일찍이 플라톤이 말했습니다. 사랑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고.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고. 플라톤은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그림자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운명적으로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빛의 밝음으로 만든 사람이 계몽된 인간이고 철인(哲人)이며 인간의 전형이라고.

그런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 그래서 빛의 밝음이 가득한 나라가 플라톤이 그린 `이상 국가'이고 국가의 전형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이상향이었습니다. 현대국가와 현대사회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가 이를 웅변합니다.

문득 `빛으로 사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뚜렷한 그림자를 안고 산다는 것이 힘든 것이라고, 밝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만큼 선명한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한 어느 시인의 독백이 뇌리를 스칩니다.

하여 지난 삶을 반추해봅니다. 사랑이 맞장구를 칠 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힘이 용솟음 칠 때는 마냥 즐겁고 기뻤던 빛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빛은 섬광처럼 왔다가 사라지고 그 때 참을 걸, 베풀 걸, 더 잘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와 아쉬움이 달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태생적 불평등과 능력의 한계가 그림자의 시원이기는 하지만 교만과 허영과 위선과 불성실이 제 그림자의 원형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윈 불효는 지울 수 없는 제 아픈 그림자이지만 자식과 손주의 대 이음의 삶은 빛이라 여깁니다. 감사와 사랑의 원천입니다. 이제 빛으로 살 날 보다 그림자와 더불어 살날이 많은 나이입니다. 그림자 또한 내 삶의 자산이요 역사이니 잘 보듬고 살아가야겠지요. 그림자도 추억이라 여기면 빛이 될 터이니 말입니다. 빛과 그리고 그림자인 삶이기에.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