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은 도인이란
깨달은 도인이란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2.08.3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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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과학이 일상의 삶 속에 깊숙이 녹아 있는 21세기! 누구나 최첨단 물질문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시대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이, 깨달은 도인(道人)들은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달은 도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공자님은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 즉,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인류의 대표적 성인인 부처님이나 공자님 예수님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부처님과 공자님 예수님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반드시 죽어야 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으며, 졸리면 잠을 자야 했다. 다만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불필요한 허세를 부리는 일 없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인지한 뒤,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열심히 배워서 정확한 앎을 확보하는 실존적 삶을 사셨을 뿐이다.

깨달은 도인이라고 해서,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김정일이 어린 시절 소나무에 올라 무지개를 잡았다는 등의 삼류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법한 신통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저차원적 망상과 망언은 이제 지구촌 전역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밖에도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고 무심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도인은,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가운데, 매사를 포용하고 희생하며 봉사만 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생각을 쉬고 또 쉼으로써, 무아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났다는 것은, 마음을 0점 조정해 마쳤다는 의미다. 달리 표현한다면 지공무사한 마음,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의식을 회복함으로써, 자신의 이득이나 명예를 위해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는 올곧은 삶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신의 이득을 위한 욕심과 욕망을 녹여냈을 뿐, 모든 상황을 무조건 인정하고 포용하는 보여주기식 삶을 산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아를 깨달아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났다는 것은, 마음을 0점 조정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0점 조정된 저울이 0을 고집하며 집착함 없이, 인연 닿는 물건들의 무게를 정확하게 달 듯이, 0점 조정된 마음도 현실을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이득이 아닌 세상의 정의를 위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정확하게 가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순자는 “是謂是(시위시) 非謂非(비위비) 曰直(왈직)” 즉,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바로 올곧은 것이라는 가르침을 역설한 바 있다.

전 인류가 깨달은 도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마음을 0점 조정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축적된 기억 뭉치인 업식(業識) 속 죽은 지식의 노예로 전락한 줄도 모른 채, 자신만의 우물 속에 갇혀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청산해야 한다. 매 순간이 태초인 가운데, 자신의 이득과 욕심 욕망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창조적이면서 올곧은 대아적(大我的)인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 어떤 주의 주장에도 물들지 않은 0점 조정된 마음으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며,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세상,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 다 함께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 하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지구촌이 하루빨리 도래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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