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부부
밥 짓는 부부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2.08.2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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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남편이 너무 미워져요.”,

“말도 하기 싫고 자꾸만 보기 싫어지네요.”

오랜만에 미용실에 온 그녀의 흰 머리카락은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처럼 족히 한 뼘은 되었다. 염색을 하며 기다리는 시간에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소심한 자신과 달리 남자답고 거침없는 성격이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는데 이제는 그런 성격이 자신과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 또한 덜렁거리는 사람이라 남편의 꼼꼼하고 섬세한 면이 좋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매사에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어 점점 불편하고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꼬들꼬들한 라면을 좋아하는 나와 불은 라면을 좋아하는 남편, 드라마가 좋은 나, 온갖 뉴스를 섭렵해야 하는 남편 등등 같은 점 보다 다른 점이 더욱 많다. 이처럼 장점이 매력적으로 보여 결혼했더니, 오히려 매력이 갈등의 요인이 되어 힘들어하는 대다수 경우일 것이다.

언젠가 `화성에서 혼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정도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사랑인 줄 아는 여자와 말이 없어도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남자. 이처럼 남자와 여자의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 보니 티격태격하며 살아간다.

사랑을 하게 되면 도파민이 분출되기 시작하고, 도파민이 넘치면 정신병이 생기게 된다. 반대로 부족하면 무기력해지면서 우울감이나 심하면 파킨슨병에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규칙적인 운동과 즐거운 생활을 위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삼 년이라 하는 것처럼 늘 좋은 수만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서로에게 못이 되어 상처를 주기보다 서로의 망치가 되어 굽은 못은 펴주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은 두드려 주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다.

결혼하고 처음 밥 지을 때, 지금처럼 맛있는 밥을 짓는 전기압력밥솥이 없었던 시절. 손등까지 물을 넣고, 딸랑딸랑 추가 흔들거리면 이분 정도 지나 작은 불로 줄이라는 엄마의 당부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잘한다 했는데 아뿔싸, 결과는 참혹했다. 남편의 퇴근 시간은 다가오고 시커멓게 타버린 밥처럼 암담했던 신혼 초 기억이 난다.

부부란 밥 짓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적당한 물과 온도와 정성과 숙련된 노련미가 필요하다. 처음 밥을 지을 때 태우기도 하며, 설익는 과정도 거쳐야 맛있는 밥을 짓게 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존재가 만나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결혼도 밥을 짓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

“그래도 이야길 하다 보니 답답한 게 줄어든 것 같아요.”

들어준 것밖엔 없는데 속이 풀린다니, 마음 털어놓을 대나무 숲이 되어 주는 것도 다행이지 싶었다.

우리가 잘 산다는 말은 무엇일까? 남들 시선에 행복해 보이고 부부 사이가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나와 공감대가 잘 맞는 사람과 사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부부가 잘 맞는 사람과 살고 있지 않듯이 평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가끔은 심쿵 한 날도 있을 테고 또 더러는 무미건조할 때도 있을 것이다. 전기압력밥솥처럼 늘 맛있는 밥을 지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쉽지만 않은 냄비 밥과 같은 것, 맛난 밥을 짓기 위해 열정이라는 불꽃과 성숙의 뜸 조절은 각자의 노력의 몫이 아닐까



<필진 소개> 2020년 한국작가 시 부문 등단. 음성 둥그레 회원. 단장시조 울림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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