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의 코끼리
도자기 박물관의 코끼리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8.28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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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옛날에 황제가 바다를 건너 싸우려고 하는데 거센 물결이 다리를 부숴놨다. 격노한 황제가 바다에 태형을 내렸다. 바다를 죄인으로 몰아 엄벌에 처했다. 왜? 자기 왕국이니까. 자기가 황제니까 모든 것 위에 있고 바다까지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연계와 법계를 혼동해서 생긴 어리석음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인용)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역량대로 살지 않고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다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황제는 `자리'가 아까울 뿐이다.

자신의 역량보다 높이 올라간 정치인들을 본다. 자리와 인간의 잘못된 만남이다. 정교하고 예민한 민주주의에 틈을 내고 자신의 욕망을 욱여넣는 행동의 끝을 국민은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커다란 것을 좋아하는 임금님』은 욕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똘끼 충만한 임금님은 커다란 것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는다. 이런 예외 없는 공격적인 취향은 매력적이다. 작은 것에도 결정을 버거워하는 관점에선 좋은 기준으로 보일 수도 있다. 더구나 임금님의 큰 것에 대한 집착은 무모하고 창의적이다. 지붕보다 높은 침대에서 자고 수영장만 한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마당만큼이나 넓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니. 사과 한 개를 먹기 위해 톱보다 큰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하다. 기꺼이 위험과 수고와 고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욕망이며 권력의 남용이다.

더구나 이런 불합리한 일을 위해 나서는 신하들이 있으니 임금님의 귀와 머리는 장식이 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참모를 잘못 뽑으면 나라의 꼴은 우스워진다. 작품 속의 임금님은 나라를 다스리는 `권리'를 `권력`으로 착각한 독재자다.

우리는 적절한 때에 올바른 일을 하길 원한다. 덕을 행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에 있다.

하지만 특정 상황 속에서 무엇이 올바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용감해지고 싶을 때 내 행동이 무모하지는 않는지 어떻게 확신할까, 자신감이 교만으로 변질되고 인심이 생색으로 변하는 때는 언제일까.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해지고, 모자라면 비겁해지는 관계 속에서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신하가 임금에게는 없었다. 임금님은 권력의 오남용을 주의해야 하고 신하들은 과한 임금의 행동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할 수 있어야 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중용'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는 중용을 가리켜 “적당한 때에 적당한 것에 대하여 적당한 사람에게 적당한 목적을 위하여 적당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말한다. 중용은 지나침과 모자람의 악덕 사이에 존재하는 무풍지대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소매점이다. 미국 정치 사상가이자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서 활약한 토머스 페인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는 버릇이 오래되면 그것은 피상적으로나마 옳은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원래 그랬으니까 하며 부당한 일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권력자의 역할은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의 이익이 무엇인지 지혜를 발휘하며 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헬스장에서 근육질의 몸을 만들 듯이 정치를, 권력을, 글쓰기를, 마음을 잘 숙성시켜 멋진 계시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어리석은 임금님이나 미숙한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미시 파시즘'을 경계하며 비논리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인'으로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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