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의 여행
머리카락의 여행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8.2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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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처서가 지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적당한 바람, 적당한 햇살, 적당한 기온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날씨에 맞게 옷차림을 바꾸고 싶어 가을 상품을 진열한 옷 가게도 기웃거리고 홈쇼핑 시청도 해본다. 그리고 여름 동안 질끈 묶었던 머리 스타일도 가을 분위기에 맞게 바꿔보고 싶다. 
사람들이 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다든지 즐겨하지 않던 파마를 하거나 머리카락 색에 변화를 주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심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실연했을까, 새로운 결심을 했을까, 이전의 마음이 변했을 것으로 본다. 외형을 바꿈으로써 결심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20대 초반에 좋아하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마음을 접기로 결심했을 때 긴 머리 스타일을 짧은 커트로 바꾸며 ‘다 정리되었어. 이제 괜찮아.’라고 자기최면을 통한 확신을 한 적이 있다. 
지우 작가의 ‘나는 한때/반달출판사’ 그림책을 처음 보고는 픽, 웃어버렸다. 새싹이었다가 껌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망아지가 되기도 하고 커튼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때는 내가 아니기도 하는 것. 무엇인지 알겠는가. 표지 가득 그려진 세로선이 나무의 결인가 싶었는데, 웬걸 머리카락이었다. 맞다, 나도 그랬다, 마치 추억 여행을 하듯이 나의 한때를 머리카락으로 보여 준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화되어 온 머리모양에 나의 한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작가의 말처럼 시간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기억하는 것으로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한때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똑바르게 자른 단발로 거리를 활보하던 시간이 있었다. 매사 정확해야 했던 성격으로 살아온 시간이다. 커튼을 치듯 앞으로 내려 두 눈을 가리던 아이들의 머리 스타일은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마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을 투사하는 심리검사의 종류에 문장완성검사가 있다. 지정된 앞 문장을 주면 이어지는 문장은 각자의 생각대로 채워나간다. 사람들은 빈칸이 주어지면 무의식적으로 채워 넣고자 한다. 그 안에 나의 심적 이야기들이 무의식적으로 채워진다. 정답을 찾고 싶은 마음, 주어진 과제를 해내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그다음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 넣을 수 있을까. 머리카락은 우리가 살아온 한때들을 시간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한때’라는 제목을 마주했을 때 ‘나에게 어떤 한때가 있었나,’ 자기 안으로 훅 들어가졌다. 그리고 살아온 시간들을 머리 스타일을 타고 여행했다. 지금은 어느새 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이 되었다. 점점 숱이 적어져 두피를 드러내는 남편의 머리카락을 보며 거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지만, 함께 해 온 여행을 추억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때를 맞이할 우리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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