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문화제 원자(原子)에서 활자(活字)로
직지문화제 원자(原子)에서 활자(活字)로
  • 김현기 직지문화제 집행위원장
  • 승인 2022.08.2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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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현기 직지문화제 집행위원장
김현기 직지문화제 집행위원장

 

빅뱅 이후 우주에는 세 개의 원자(양성자, 광자, 전자)가 출현한다. 이후 탄생하는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자의 자유로운 배열의 결과다. 원소 주기율표상의 모든 물질은 양성자의 결합 數로 결정된다. 원자의 배열 구조가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물질세계가 출현한다. 물질세계인 자연은 원자의 배열과 결합구조의 변화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주 역사의 하나인 우리 은하계, 그 은하계의 일부가 태양계다. 태양계의 작은 행성인 지구별의 진화과정인 신생대 플라이스토세에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지구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브레인(뇌)을 발달시키는 진화전략을 따라간다. 불과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간의 대뇌 신피질은 2배로 증가한다. 늘어난 뇌의 감각 연합 피질의 음성 정보가 운동연합 피질의 발성 회로와 연결되어 언어가 탄생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개념과 의미를 공유하고 집단 지향성을 갖는다. 언어를 통해 가능해진 상징의 세계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만의 새로운 가상세계이며 제2의 자연이다. 언어를 통한 개념과 상징의 세계는 의미의 공간이다. 물리적 우주에 인간은 존재하지만,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에 의해 개념을 공유하는 인간 집단이 확대되면서 인간의 사회화가 가속화된다. 
사회적 실재는 개념에서 만들어지고 개념은 언어를 통해 전파된다. 언어를 통해 공유된 개념이 만드는 사회적 실재가 인간 문화의 핵심이다. 원자의 자유로운 배열의 결과로 자연 세계가 출현했고 인간이 탄생한다. 인간은 브레인 진화과정에서 언어를 만들고, 언어를 통해 상징과 의미를 담는 가상세계인 ‘문화’를 창조한다. 자연은 물리적 진화를 쫓아 가지만 인간은 문화적 진화를 따라간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자유로운 원자의 배열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언어의 출현으로 개념이 공유되고 집단 지성이 탄생한다. 인간만의 뛰어난 소통 도구인 언어의 활용으로 감정과 의미, 개념을 공유하는 독자적 진보인 ‘문화적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문화적 진화의 여정에서 언어는 소리를 통한 의미 공유라는 기술적 한계에 부딪힌다. 
개별 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의미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억’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억해야 지각하고 지각해야만 생각하고 생각해야만 행동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이 왜곡과 저장의 한계를 만난 것이다.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자’를 고안한다. 문자를 통해 기억의 어려움을 해결한다. 생각을 문자로 기록하고 저장하여 소통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하지만 문자를 활용하는 기록 기술의 더딘 발전은 로그함수로 늘어나는 지식을 모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지식을 문자로 저장하는 기술인 ‘인쇄 기술’이 탄생한다. 인쇄는 지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는 기술이다. 손으로 문자를 써서 저장하는 ‘필사 인쇄’를 거쳐 목판에 문자를 새겨 찍어내는 ‘목판인쇄’를 넘어, 기록 기술의 혁신인 ‘금속활자 인쇄술’을 창안한다. 
활자(活字)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글자다. 살아있는 문자다. 살아있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의미다. 인쇄술의 혁신은 재료보다 개별 글자를 자유롭게 배열하는 조판기술이 핵심이다. 글자의 조합으로 지식이라는 상징과 의미를 만드는 혁신 기술이다. 글자가 자유롭게 연결되고 배열할 수 있게 됨으로써 수많은 상징의 세계인 지식이 무한히 출현한 것이다. 글자가 배열의 자유를 획득한 ‘조판기술’은 목판 인쇄술을 지나 금속활자 인쇄술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원자의 배열기술이 물질세계인 자연을 만들었고, 활자의 배열기술이 의미의 상징 세계인 지식을 만들었다. 원자에서 물질세계가, 활자에서 정신세계가 출현한 것이다. 인류 문명의 핵심인 활자의 배열기술은 우리 조상인 고려인들이 처음으로 창안했다. 지식을 종이에 기록하는 기술은 인쇄술이다. 지식을 단백질에 기록하는 기술은 바이오 기술이다. 지식을 반도체에 기록하고 활용하는 기술은 IT 기술이다. 
청주에는 이 세 종류의 과학 기술이 모여있는 도시다. 고인쇄박물관에 금속활자 인쇄술이, 오송에 바이오 기술이, SK 하이닉스와 파운드리와 같은 기업에 IT 기술이 집적되어 있다. 직지에서 시작된 활자의 배열기술은 단백질의 배열기술로 반도체의 집적기술로 발전한다. 문명의 불꽃이 된 금속활자 인쇄술이 바이오와 IT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불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2022 직지문화제는 청주의 자긍심을 불꽃으로 피우려 한다. ‘직지 불꽃 강의’에서, 마당극 ‘금속이와 활자’에서, ‘고려문화 체험’에서, 다양한 체험과 공연, 전시라는 콘텐츠를 통해 청주의 자긍심을 찾고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지키려 한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제법 느껴지는 9월 2일 금요일 저녁에 직지 문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손잡고, 풍경으로 아름답고, 경관으로 눈부신 청주고인쇄박물관과 운리단길에서 직지의 지난 이야기와 새로운 희망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즐기자. 2022 직지 문화제가 자랑스러운 문화시민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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