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를 본다는 것
뱅크시를 본다는 것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8.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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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현실'이라는 인식의 틀을 절대 전제조건으로 한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허구적 해석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현실 그대로를 전달함으로써 특정 시각에 대해 관객을 설득하려는 시도로 제작된다.

그럼에도 다큐멘터리로 뱅크시(Banksy)를 본다는 것은, `현실'이 충실하게 반영되어 그 속에 안주하거나, `창작'과 `가치'차원의 예술적 시각이 `현실'과 어떻게, 얼마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를 가늠해야하는 깊은 모순이 있다.

21세기의 어느 날, 지구상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소더비경매장에 그림 한 점이 나온다. 치열한 호가 경쟁을 거쳐 나무망치가 두드려지고 작품의 낙찰이 결정된 순간, 그 그림은 돌연 내장된 파쇄기에 의해 잘려나가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뱅크시를 이해하기 위해 자주 거론되는 이 일화는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그전에 뱅크시는 `이름과 실체의 흔적이 알려지지 않는 작가', `거리미술을 통한 도발적 저항 예술가' 정도로만 세상에 주목을 받아왔다. 그가 영국의 테이트 모던이나 프랑스의 루브르, 미국의 MoMA(뉴욕 현대미술관)등 세계적 미술·박물관에 몰래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도발을 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기이한 행동을 통한 이벤트로 통용된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대중적 판단은 어떻게든 주목을 받고야 말겠다는 정신 나간 한 작가의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있다. `예술이 놓인 자리'가 관광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상하고 위대한 박물관이거나 미술관의 높은 곳이어야 한다는 `추앙'에 머물고 있는 한 `이상한(extraordinary)' 해프닝은 흔들림 없이 뚜렷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리는 행위'로써의 그림이, 낡고 비어있어 위험한 도시의 폐허에서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남아있음으로써 예술적 도전의 가치로 단장되는 것은 그 가치가 선명하게 차이가 있다.

단언컨대 세상의 모든 낡고 가난하며, 비어있고 버려져 사람이 흔적이 사라진 폐허를 살리겠다는 허망은 대부분 벽화로 시작된다. 그리하여 전에 `없던 것'이 뜬금없이 나타나는 구경거리로 관심을 끌면 이른바 도시재생이 명목으로 등장하는 수순을 대동소이하게 밟아간다.

`천사의 날개'류의, 현실성이 전혀 없고 예술혼은 더더욱 기대하게 어려운 담벼락은 눈요깃감에 머물고 말 뿐, 그나마 돈과 일이 떨어져 그림 기술자(?)들이 떠나고 나면 다시 공허해지는 악순환은 거듭 되풀이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뱅크시(Banksy)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는 `현실'이 있다.

`침묵하지 않는 예술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뱅크시는 난민과 사회적 약자,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세력과 자본가 계급을 향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 메시지 등을 구현하는 작품 활동을 한다.

그래피티(Graffiti)작가로 도발적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는 뱅크시는 현실세계의 모순을 줄기차게 들춰내면서 끊임없는 전복(顚覆)을 시도한다. 고전의 반열로 추앙받는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 역시 통렬한 쾌감을 주는 데, 거기에는 성역처럼 고착된 고정관념에 대한 파괴를 통해 가난하고 약한 세상을 향하는 새로운 상식의 메시지가 있다.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으로 분류되는 그래피티는 비주류로 출발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신분과 인종의 처지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장하고 싶은 과시의 표현 수단이, 적나라한 현실세계의 모순을 고발하면서 각성을 촉구하는 대중예술로서의 위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뱅크시의 도발은 심대한 예술사적 가치가 있다.

저격용 총을 겨눈 병사의 사진을 전봇대에 둘러 결국 총구가 자신을 겨누는 반전(反轉)의 시각디자이너 이제석의 반전(反戰)처럼, 뱅크시의 도발적 예술테러는 세상에 없는 완벽한 평화를 향한 외침이다.

그럼에도 `자본'은 가격으로 끝없이 그, 뱅크시를 성역처럼 추앙하고 있으니, 이 말릴 수 없는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 `현실'이며, 다큐멘터리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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