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멋
세월의 멋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2.08.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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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산길을 걷는 발길에 뭉치가 툭 채인다. 연두색 밤송이가 굴러 저만치 달아난다. 가을도 오지 않았는데 한창 알맹이가 단단해질 시기에 이른 낙과를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견뎠을 마음을 안다. 가지를 놓지 않으려 악물고 버텼을 지독한 안간힘을 짐작할 수 있다. 온통 가시로 무장한 풋밤은 아직도 경계 중인 듯하다. 땅에서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다. 그 모습이 고슴도치를 연상시킨다.

밤나무의 꽃은 암수 한 그루의 암수 한 꽃이다. 꽃자루의 밑동 가까이에 암꽃이 피고 바로 아래에 수꽃이 핀다. 마치 긴 수염 같다. 수정을 끝낸 수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암꽃에 씨방이 자라면서 이때부터 가시를 만든다. 연약한 씨방을 보호하여 밤알이 완전히 익을 때까지 날카로운 가시로 자기 몸을 보호한다. 가시를 벗기면 두 개의 껍질이 더 나온다. 갑옷 같은 껍질이 한 겹, 또 얇은 막으로 된 보늬 한 겹을 벗겨내면 드디어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나무를 올려다본다. 가지에 여러 송이가 탐스럽게 매달려 햇볕을 받고 있다. 클 대로 큰 밤송이는 곧 다가올 처서의 선선한 바람을 감지했을 터, 알밤을 위해 막바지 분투 중으로 보인다. 서서히 알이 차오른 밤송이는 가을을 직감한 순간 혼자 벌어져 땅에 떨어진다. 놓아야 할 때를 알고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것이다.

나무가 내 앞에 우뚝 선다.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름에는 그늘로, 가을에는 알밤으로 마냥 베풀고 사는 생. 그저 가을은 거저 오는 게 아니라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밤송이가 나뒹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 이유이지 싶다. 알밤의 화려한 꿈을 접은 풋밤의 가을은 내게 와 있는 가을이 궁금했었나 보다. `그대의 계절은 안녕하신가?' 묻는다. 나의 가을이라. 생각이 깊어진다.

언젠가 내 또래들에게 젊었던 30대로 갈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것이냐고 물었다. 질문에 하나같이 싫다고 답했다. 아무리 젊음이 주어진다 해도 너무 치열했던 시간과 현재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지금이 좋다. 시간에 쫓겨 동동거리던 시간은 숨 막히는 긴 악몽이었다. 이제 여유가 생겨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고 자유로워진 이때가 좋다. 좀 어설프고 헐렁해 보일지라도 목하, 나는 최고로 평화롭다.

제아무리 청춘이라 한들 세월을 쌓아온 나이에 비하랴. 수없이 고통을 견디어 보았고 아파 보았다. 좌절을 딛고 일어섰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받아 보았다. 그걸 다 겪어낸 나이가 아닌가. 이제 세상을 알만한 나이. 제대로 세상을 사는 일은 나잇값을 하며 사는 일이다.

이즈음이면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수그러지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커진다. 이건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바람에 깎이고 파도에 부딪혀 둥글둥글해져서야 안다. 어쩌면 나 아닌 다른 이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는 게 슬프지만은 않다. 그는 그대로의 그로, 나는 나대로의 나를 인정하면 된다.

세월은 흘러서 가는 게 아니라 삶 안에 쌓이고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어 오늘의 내가 된다. 멋지게 나이를 먹는 일은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순하게 늙는 것이 곱게 늙는 것이리라. 세월은 세월대로 흐르도록 두고 나이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지나고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이런 멋진 노래도 있지 않은가. 부부로 얽힌 그이와 나. 마주한 서로에게서 세월의 멋을 알아가며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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