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성숙하게 부탁하고 거절하기
정중·성숙하게 부탁하고 거절하기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2.08.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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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니체가 언급한 인간 정신의 발전 3단계 중 `낙타→사자→어린이' 단계에서 두 번째 사자로 살겠다고 시집 《사자는 짐을 지지 않는다》를 통해 선언하고도 여전히 낙타 단계를 오가며 번민 중이다.

책을 읽고 강의 자료를 만들어 수업을 진행하는 삶이라 늘 시간이 긴박하고 읽고 싶은 책이 많다 보니 운동하는 시간도 아까워 촉박하게 쓰는 편인데 남을 위해 서너 시간 빼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들어 한 달에 몇 건씩 반나절을 써서 도와줘야 하는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처음 요청한 부탁들인데 연이어 몇 건의 이메일이 들어오니 심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마침 지인이 추천해준 롭 무어의 `레버리지'를 읽는 중에 맞닿은 부분이라 방점을 찍고 마음 다스릴 시간을 가졌다. 그런 고충을 알기에 가급적 남에게 부탁하는 일을 잘 안 만드는 편이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쉽게 갈 일도 스스로 해결하며 고집스럽게 돌아가는 편이라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다.

현재 있는 책 중 롭 무어의 `레버리지'는 경제경영 부문에서 베스트셀러 1위이다. 자본주의를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로 `자본주의 속에 숨겨진 부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처리하고, 가치가 낮은 모든 일을 아웃소싱하고,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창출한다는 레버리지 철학에 관한 내용이다.

레버리지는 최소한의 노력과 시간으로 현대 과학 기술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비즈니스 컨설턴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인생을 바꿔줄 위대한 책으로 추천했다. 지금까지 정해진 룰 안에서 정도를 고집하며 교과서적인 삶을 살아온 내게 큰 파동을 일으킨 책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수용할 부분이 보인다. 레버리지 할 것인가, 아니면 레버리지 당할 것인가?

지나친 과잉 배려로 남을 위한 시간 비용이 늘면서 점점 고민이다. 한 번쯤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서 노트북을 들고 가까운 베이커리 카페로 향했다. 통유리 가득 액자처럼 드리운 상수리 군락이 안온함을 준다. 가지 사이사이로 비켜 드는 햇살과 짙푸른 하늘을 절묘하게 활용한 카페, 그러고 보면 이 카페 사장도 레버리지 활용의 대가이다. 몇 가지 색연필로 굵게 밑줄 친 부분이 보인다. 내가 집중해서 새겨야 할 핵심 문장이다.

“누군가에게 무리한 요구를 받았을 때는 공손한 태도로 이렇게 말하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도움을 청해주신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도와드리고 싶지만,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저를 기억해 주세요.”

남에게 부탁하는 일은 못 하면서도 여전히 남의 부탁은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 안의 비루한 도덕을 점검하며 하지 않아야 하는 목록을 적어봤다. 내 삶의 건강한 투자 시간보다 비용 시간이 많으면 과감히 라이프 스타일을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자의 말대로 내 삶의 행복과는 먼 방향으로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거절은 쉽지 않다. 그동안 맺어온 인간관계에 스크래치를 내기 때문이다. 부탁하는 사람도 두세 번 곱씹은 후에 용기 낼 일이고 부탁받는 사람의 상황도 고려하여 신중할 일이다. 정중하고 성숙하게 의뢰하고 거절하는 건강한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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