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뽑는 날
줄 뽑는 날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2.08.1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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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소란을 떨던 새들이 온데간데없다. 감나무 밑 돌확에 고인 물을 한 모금 넘기고 자리를 뜬 직박구리가 가장 늦은 귀가였나보다. 땅거미가 지고 가로등이 훤히 비치는데 낮시간 할 일을 마치지 못한 매미만이 밤을 지새울 듯하다. 어둑해져서야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텃밭에 발을 딛는다. 늘 그랬듯 모기와 깔따구가 마중한다. 대충대충 푸성귀 몇 개 챙기고 달려드는 벌레를 피해 발을 옮기는 순간, 이마며 코며 팔뚝에 무언가 제대로 들러붙는다. 움직이는 족족 더 많은 것들이 들러붙어 휘감는다. 가느다란 실도 아닌 것들과의 조우다. 아! 이런 모기 피하려다 먹잇감 되는 건가?

떼어내려 해도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 쉬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서둘러 안으로 들었다. 이제 바깥 출입금지다.

아침 찬거리 준비다. 어제 당한 것이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정이다. 여전히 모기는 귓전에서 존재를 과시한다. 녀석들은 잠도 없나 온종일 스토커처럼 따라붙는다. 그리고 어느새 빈틈을 찾아 공격의 포인트를 달성한다. 손목을 물었다. 제기랄! 손가락을 물리지 않으려고 장갑을 끼었는데 틈새 공격을 한 것이다. 모기를 잡아먹는 녀석들은 뭐 하고 있는 건가? 어제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러 나갔다가 제대로 환영받은 곳에 흔적이 남았다. 나방에 꿀벌에 갖은 날벌레의 사체가 잔뜩 붙어 있다. 정작 달라붙어야 할 모기 사체는 없다. 거미는 모기를 안 잡아먹는 건가? 그리고 하필 다니는 길목에 거미줄을 치는 건가? 한 손에 커다란 나뭇가지를 들었다.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면 빠져나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거미줄이 될 수 있기에, 죽이지는 못하고 애써 쳐놓은 거미줄 소탕 작전이다. 처음엔 잠자리 잡으려 거미줄 걷던 잠자리채에서 벌어진 가지가 합장하듯 거미줄에 포박되었다.

그러고도 몇 번의 소탕 작전이 더 펼쳐졌다. 아무리 제거해 봐라. 이젠 습득된 기술과 경험이 있고, 단련된 인내력이 생겼다 무시한다. 날벌레의 기승이 더할수록 거미줄 숫자는 늘었고 더 촘촘해졌다. 결국, 지나다니는 길목의 줄만 제거하고 거미와 삶의 터를 공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거미는 터 전체를 점유하고 싶은 듯하다. 머리와 경험이 축적된 듯,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까지 길이를 측정한 다음 바람이 불어올 때를 기다린다. 바람이 분다 싶으면 뽑아내기를 멈추고 번지점프를 하고 바람에 몸을 맡긴다. 바람에 날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하는 나뭇가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다시 바람이 분다. 그러나 또 실패, 그 밑가지에 붙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거미가 아니다. 더 길게 뽑아냈다. 바람이 분다. 이번엔 성공이다. 그렇게 긴 줄을 걸고, 거미줄을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여러 가닥의 줄을 뽑아내고 촘촘하게 엮어 붙인다. 다 치기도 전에 커다란 나방이 지나다 줄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 거미다. 그러건 말건 지침 없이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낸다. 마지막 오르막을 오를 힘은 동이 낳을 텐데, 잠시의 멈춤도 없이 전진이다. 제법 격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제동이 걸릴 만도 한데,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비속에서도 늘 그랬었던 세상이려니 한눈팔 겨를이 없다. 포동포동했던 배가 홀쭉해진 듯하다.

뽑아내는 실은 기다리며 인내한 에너지의 축적, 지칠 줄 모르고 엮어내는 줄은 꽁무니 안에 축적해 놓은 시간이다. 에너지가 고갈되면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을 먹어 치우면서까지 인내하고 기회를 잡았다. 거미는 거미줄을 치기 위해 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가능하면 자신의 몸을 가눌 수도 없는 높은 곳으로, 그리고 거미줄을 뽑아내며 시작했던 바닥으로 줄을 뽑아내며 내려왔다. 바닥에 가까울수록 더 긴 거미줄을 뽑았다. 긴 거미줄은 살랑이는 바람에도 쉬 날려 원하는 곳보다 더 먼 곳에 달라붙었다. 한 가닥의 실이 구조가 바뀌는 시점이다. 이제부터가 더한 인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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