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도 아닌데
골프도 아닌데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8.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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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점심을 먹으면 나는 집을 나선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 많은 것이 내 일상이긴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사무적인 일은 오전에 함으로서 거의 날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듯 집을 나선다.

감물에 있는 게이트볼장에 가기 위해서다. 벌써 십 년이 훌쩍 넘었다. 내 집이 있는 곳은 음성의 설성공원 옆이다. 공원 가까이 게이트볼장이 있다. 지척이고 이웃에 있다. 그런 게이트볼장을 두고서 굳이 승용차로 3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날마다 달려서 이담 게이트볼장을 찾는다.

“골프도 아닌데, 돈 들이고 시간 낭비하고, 그 먼 데를” 못마땅해하는 남편의 두런거림을 못 들은 척하며 집을 나선다. 왜 그럴까? 운전대를 잡고 가면서 가끔 생각하지만, 그냥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처음 귀촌해서 딱히 다닐 곳이 없어 빌빌대면서 고작 수안보 온천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다가 찾아든 이담 게이트볼장. 얼마 되지 않아 집을 음성으로 옮긴 후로도 줄곧 멈추지 않고 그곳을 찾아간다. 습관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꿀단지라도 숨겨 놓았는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던가? 그것도 아닌데 집 가까이 있는 게이트볼장을 놔두고 이담으로만 달려가는 내가 이상하긴 하다.

몇 번 옮길 생각으로 다른 게이트볼장을 가보기도 했다. 그러나 돔구장도 사람들도 낯설어 부담스럽고 그래선지 볼도 생각대로 나가지 않아 별 재미도 느낄 수 없으니 그저 편한 이담으로 발길이 돌려지곤 했다.

귀촌한 친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다 보니 손목도 무릎도 아파 밤이면 끙끙 앓는다면서 올해만 하고 그만두자 두자 다짐하던 것이 몇 년이 되었다고 해가 바뀌면 또 밭에 나가 풀을 뽑는 자신에게 `미쳤지, 미쳤어'를 수없이 되뇐다는, 분명 나도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밥풀때기 하나도 아끼던 좁쌀망구였다 평생을 죽자사자 기를 쓰고 살았으면서 이웃에 있는 게이트볼장에 가면 될 것을 굳이 먼 데 있는 게이트볼장에 가느라 시간 낭비하고 기름 낭비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말이 안 되는 호사를 하는 중이다. 나는.

아들과 며느리가 골프를 즐기는 것과 뭐가 달라, 내겐 너희들의 골프나 마친가진데….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이담 게이트볼장, 그래도 넓은 창문을 여럿 달고 인조 잔디도 깔린 나무랄 수 없는 구장이긴 하다.

창고 문처럼 커다란 외짝 문을 드르륵 소리가 나도록 밀치고 들어가면 먼저 온 회원들이 몇몇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TV를 켜놓고 성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70대도 드물다. 귀가 절벽인 회원도 여럿이라서 회원들은 악을 쓰듯 소리치며 볼을 친다. 딱히 선수처럼 잘 치려는 생각들도 없이 그저 시간을 죽치는 모습들이다.

그러니까 지근거리의 공을 못 맞히고도 단체 경기인데 팀원에게 미안함 따위도 갖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니 십 년을 하루 같이 손 맞춰 경기했으면서도 셀 수 없이 많은 대회에 출전하고도 한 번도 수상권에 든 적이 없다. 참가에 의미를 둔다고 좋게 이야기하지만 모두 실력 없는 방안 퉁소들이다.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볼도 못 맞히며 멋쩍게 씨익 웃는 회원들, 게이트볼을 치면서 깨달은 것은 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것이다.

공 하나를 칠 때도 온 정신으로 집중해야지 딴 생각 일만 해도 어김없이 빗나가고 마는 공을 보면서 세상 사는 이치와 하나도 다름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딱, 볼과 볼이 부딪히는 소리, 적중하는 소리, 그 해맑은 희열의 소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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