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귀가 내게로 왔다
팔랑귀가 내게로 왔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8.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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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치기였을까. 그 가게에 발을 들인 것이 애초 잘못이었다. 혼자서는 함부로 다니지 말라는 가이드의 당부도 있었다. 그럼에도 몇몇은 가이드와 함께 향신료와 대추야자 선물을 사고 있는 일행들에게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여기저기를 기웃기웃했다. 그 중 나도 한명이었다. 여행을 가면 먹는 것 보다 그 나라의 특징이 들어 간 공예품을 사는 걸 나는 좋아한다.

오늘은 해외학회 마지막 일정으로 두바이의 향신료 시장을 방문했다. 시장을 들어서니 향신료 냄새가 마스크를 썼음에도 강하게 느껴진다. 두바이는 이슬람문화권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나 아랍인들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다. 향신료 시장의 상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향신료 시장이라지만 향신료 외에도 완구점이나 신발, 가방, 전통 그릇을 파는 곳도 있었다.

매는 높은 곳에서 먹잇감을 찾기 위해 선회를 한다. 그리고 일단 먹잇감이 정해지면 날개를 접고 300㎞의 속도로 급강하해 먹잇감을 발로 잡아챈다. 그러면 먹이는 기절하거나 즉사한다고 한다. 분명 그 파키스탄인들도 내가 먹잇감으로 훌륭해 보였으리라. 시장을 기웃거리다가도 전통그릇을 파는 그 그릇 가게 앞을 몇 번이나 서성거리다 지나가곤 했으니 그들에게 나는 표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혼자 어슬렁거리는 모습에 쾌재를 불렀으리라. 훤칠하게 큰 두 남자는 하얗고 긴 원피스처럼 생긴 깨끗한 아랍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옷도 그렇고 무엇보다 얼굴이 너무도 말쑥했다. 내가 몇 번이나 그 가게 앞을 지나다녀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세 번째로 그 가게 앞을 기웃거릴 때였지 싶다. 갑자기 등 뒤에서 “싸다 싸!”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찌 알았을까.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순간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고 무엇에 마취된 듯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가게 되었다. 바깥에 진열되어 있는 그릇보다 안에 있는 그릇들이 더 예쁘고 종류도 많았다. 사실 그들이 `싸다.'라는 그 뜻을 아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타국에서 듣는 모국어에서 동질감 비슷함, 아니면 한국인의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생겼던 듯하다. 순간 나는 그들에게 “유로 오케이?”를 외쳤다. 그때 내 수중에는 유로가 쾌 많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두바이 화폐는 있지도 않거니와 계산도 잘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유로는 계산을 할 수 있어 유로로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두바이 화폐를 요구했고, 그게 아니면 카드로 하란다. 그때 나는 미련 없이 나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그만 그들의 요구대로 카드로 계산을 했다. 그때부터 그들의 표정과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영수증을 요구했지만 손을 내 저었다. 줄 수 없다고 한다. 사냥이 끝이 난 것이다. 그들에게서 회심의 미소도 보았다. 무언가 싸한 게 느껴졌다.

나는 그길로 가이드에게 달려갔다. 사정 얘기를 했더니 가이드는 혼비백산을 해서는 그 가게로 달려가 주었다. 카드 체크기를 압수하다시피 한 가이드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소리로 호통을 치고는 결제 취소를 해 주었다.

가이드는 그들이 파키스탄인들이며 전문적이 사기꾼들이라고 했다. 관광객을 상대로 그렇게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상냥한 미소를 띠며 다가올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을까. 너무도 예의바른 행동에도 의심을 해야 했을까. `싸다 싸!'라는 말도 믿지 말아야 했을까. 과연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날 그들의 말투와 미소가 내 눈과 귀, 생각까지도 통제 불능으로 만들어 놓은 건 확실했다. 그러니 팔랑귀가 내게로 다가와 팔랑팔랑 휘날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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