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그 아이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2.08.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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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오래 전 어느 날 갑자기 만화방 문이 활짝 열리고 한 아이가 밖으로 달아났다. 화들짝 놀란 주인이 “저 놈 잡아라”를 큰 소리로 외쳤다.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만화책에 푹 빠져 있던 영식은 뒤늦게 알아들었지만 쏜살같이 달려가 곧바로 그 아이의 덜미를 잡았다. 그 아이는 다시는 안 그럴테니 놓아 달라는 것이었다. 마치 낚시꾼에게 잡힌 물고기가 살려달라고 숨을 헐떡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영식에게 그 아이는 어리고 약한 불쌍한 아이가 아니라 떠돌이 부랑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영식은 열여덟 살 고 2였다. 주인은 그 아이에게 돈을 내라며 거친 말로 다그쳤다. 주인은 돈을 받으려고 그 아이에게 집을 물었다. 듣고 보니 그리 멀지 않은 듯 보였다. 주인은 영식에게 사례를 하겠다며 그 아이의 집을 찾아 부모에게 돈을 받아다 줄 것을 부탁했다. 값이 제법 꽤 되었다. 영식은 사례보다 정의감과 영웅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곧장 그 아이의 집으로 향했다. 집은 생각보다 멀었다. 아니 멀기보다 그 아이가 다른 곳을 일러주거나 엉뚱한 길로 안내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집을 찾다가 어두워지면 영식이가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영식은 왔던 길로 다시 오게 되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가고 이 집이랬다 저 집이랬다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어린 녀석이지만 화가 나 소리쳤다. “너희 집이 어디냐?”, “난 집이 없어요” 온전하게 바른대로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어찌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미울망정 걷다가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서 같이 나눠 마셨다. 그새 정이 든걸까 날이 어두워지면서 초저녁 별이 두 사람을 형제처럼 빤히 보고 있었다. 한켠으로 영식은 괜한 일을 떠맡은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드디어 옥신각신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 아이의 집에 다다랐다. 그 아이의 엄마는 영식을 보는 순간 다짜고짜 적반하장으로 무엇 때문에 여기 왔냐고 오히려 다그치듯 물었다. 영식은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주인이 시키는대로 돈을 청구하였다. 그 순간 그녀는 앙칼진 목소리로 그 아이를 경찰에 넘기든 팔아 넘기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 잠시 멈칫하는 사이 그녀는 아이를 향해 사정없이 매질이 시작되었다. 왠지 아이에게 공공연히 미안했다. 우선은 그 곳을 빠져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은 또 다시 만화방으로 향해야 했다. 해질녘 시장기 도는 길목에서 아이와 짜장면을 먹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불우한 가정환경은 아이를 학대로 만들었다. 게다가 학대는 아이를 그냥 집에 머물게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아이도 갈 곳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이리저리 떠돌다가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돈이 없어도 배가 고프니까 보이는대로 닥치는대로 주워먹고 도망치고 그렇게 떠돌았던 것이었다. 결국 만화방 주인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듯 물러섰다. 이제는 그 아이를 보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의 그림자가 어둠속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래 전 그때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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