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성 누대에서
백제성 누대에서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8.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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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입추를 지나고 나면 여름은 슬슬 떠날 준비를 한다. 아직 삼복을 벗어나지 못한 무더위 고개지만,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즈음에서 돌아보면 봄을 맞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봄은 이미 아득히 떠난 지 오래고 이제는 여름마저 떠날 채비를 한다. 봄을 맞는 설렘은 아직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렇게 볼 때,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가 느낀 봄 맞이 설렘은 현재 진행형이다.


백제성루에서(白帝城樓)

江度寒山閣(강도한산각) 강은 추운 산 누각을 건너고
城高絕塞樓(성고절새루) 성은 변방의 성루에 솟았구나
翠屏宜晚對(취병의만대) 푸른 병풍은 저녁까지 마주할만하고
白谷會深遊(백곡회심유) 하얀 계곡은 깊히 떠돌 수 있네
急急能鳴雁(급급능명안) 기러기 울음 소리 다급하고
輕輕不下鷗(경경불하구) 땅에 내리지 않는 갈매기 경쾌하구나
彝陵春色起(이릉춘색기) 무너진 언덕에는 봄빛이 일어나니
漸擬放扁舟(점의방편주) 점차 쪽배가 흘러 가는 듯하구나

8월이면 배롱나무 꽃이 운치를 더해 주는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에는 만대루(晩對樓)라는 누각이 있다.

주변의 경관을 조망하는 전망대인 셈인데, 그 이름의 유래가 위의 두보(杜甫) 시라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시는 백제성(白帝城)이라는 장강삼협(長江三峽) 험지에서 봄을 맞는 시인의 설렘이 잘그려진 시이다.

종일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저녁까지 의당 보아야 할 정도로 좋은 게 푸른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다. 삭막한 겨울에는 상상도 못했던 푸른 병풍 아니던가? 시인의 설렘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계곡은 어떠한가? 겨우내 꽁꽁 얼어 붙어서 흐르지 않던 물이 이제는 흰 비단처럼 흐른다. 그러니 계곡 깊숙한 곳까지 꼭 쏘다녀야 한다. 이 또한 시인의 설렘을 잘 반영한다. 봄의 빛이 여기저기 돋아 나는 것이 마치 배가 지나가는 것 같다고 한 것도 일품이다.

입추가 지나고 나면 여름도 얼마 남지 않는다. 새봄을 맞을 때의 설렘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을이라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앞으로 흐를 줄만 아는 세월은 오늘도 무척 급하기만 하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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