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의 전쟁기 1
가을이의 전쟁기 1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2.08.07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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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김현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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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는 참 잘생긴 숫 고양이다. 첫봄에 만났지만 가을이 되어서야 쓰다듬을 허락해 `가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가을이는 마당 정원 예원의 마스코트다. 훤칠한 외모 때문인지 같이 사는 암 고양이 새봄이와 네 번이나 새끼를 낳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묘생(고양이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고양이 세계에 치열한 생존 전쟁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강의 준비 하느라 늦은 밤까지 책을 보던 어느 날이다. 갑자기 밖에서 동물들이 싸우는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라 뛰어나가 보니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이놈들'하고 소리를 지르니 두 놈 모두 꽁지가 빠지라고 도망을 쳤다. 한 놈은 가을이고 또 다른 한 놈은 덩치가 아주 큰 노랑 고양이였다. 이후에도 며칠에 한 번씩 지키려는 녀석과 빼앗으려는 녀석의 한밤중 혈투는 계속되었다. 고양이의 영역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놈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영역 싸움한다. 만나자마자 공격하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탐색전과 기싸움을 벌인다.

이때 내는 울음소리는 정말 특이하다. 2m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보면서 듣기 어려운 희한한 소리를 낸다. 심할 때는 한 시간 이상 울음소리로 대결한다. 대부분은 그러다 서로에 갈 길을 가지만 때로는 격렬하게 싸운다. 고양이 특유의 `냥냥 펀치'를 날리다가 목이나 배를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 버린다. 물린 고양이는 심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을이를 공격하는 노랑 고양이는 우리 마을 대장 고양이다. 덩치도 아주 크고 내가 쫓아내도 어슬렁거리며 걸어간다. 도망가다 힐끗 뒤를 돌아보는 여유까지 보인다. 이놈이 가을이를 내쫓고 집을 차지하려는 것이고 가을이는 집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거센 대장 고양이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는 가을이가 안쓰러워 노랑 고양이가 올 때마다 소리를 질러 쫓아 버렸다. 하지만 한밤중에 벌어지는 싸움까지 막아 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눈물겨운 가을이의 전쟁은 해를 넘겼다. 무엇이든 지키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갑자기 가을이가 사라져 며칠간 보이지 않았다. 털이 뽑혀 흩어진 것을 보니 한바탕 전쟁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가을이는 도도하고 귀족적인 고양이다. 데크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가을이의 몸에는 귀티가 줄줄 흐른다. 이 녀석은 틀림없이 고양이 중에 귀족이나 왕족이었을 것이다. 이런 가을이가 며칠을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저녁 10시까지 기다리다 가을이를 찾아 나섰다. 플래시를 들고 `야옹~'소리를 내며 가을이를 불렀다. 집을 한 바퀴 돌고 밭으로 갔다. 계속해서 고양이 울음소리로 냈더니 멀리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밭 끝까지 가서 소리를 더 크게 내니 100m쯤 떨어진 밭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플래시를 비춰보니 고양이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고양이의 눈은 멀리서도 참 잘 보인다. 틀림없이 가을이였다. 캄캄한 밤중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 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소통했다. 초롱초롱한 별빛 아래 사람과 동물이 서로를 알아보고 부르는 광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가을이가 나에게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앞서고 가을이도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사료와 물을 정신없이 먹는 가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싸움에 패하고 쫓겨난 가을이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영역 싸움의 패장 가을이의 첫 번째 귀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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