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속 색다름
어울림 속 색다름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8.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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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은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우리는 잔디, 여기에 산다.'라며 시작하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이어진 다음 장면엔 `이곳에선 목마를 일이 없다.'란 글 텍스트와 함께 스프링클러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오는 넓은 잔디밭 그림을 보여준다. 이 대목까지 오면 독자들은 화자가 골프장의 잔디라는 걸 금세 눈치 챈다.

생육환경으로만 보면 골프장의 잔디들은 최고의 조건 속에서 자란다. 목마를 틈 없이 때 되면 물 주고, 비료 주기와 잡초 제거로 영양분 부족할 겨를 없이 자란다. 그뿐인가 밟고 다니기 편리할 정도의 크기 이상으로 자라지 않게 잔디를 깎아 낸다.

그림책 `풀 친구'(사이다·웅진주니어)는 푸르고 단정한, 우리가 흔히 보는 그 골프장 잔디밭의 잔디와 풀의 이야기다.

이런 가벼운 이야기지만 작가가 말하는 잔디와 풀과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 삶 속의 난제들을 보게 된다. 우리는 보편과 평균 그리고 `끼리끼리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 보편에서 벗어나 스며들지 못하면 인생이 고되게 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똑같이, 똑같이…' 자라길 희망하며 부모들을 그리 키운다.

시대마다 개인에게 요구하는 인재상이 있다. 경제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함께'를 표방하던 시절, 민주화와 함께 온 개인주의 그리고 요즘, 색다른 것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길 찾아가는 것을 시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보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잔디는 사람과 밀접한 곳에 키우는 식물이다 보니 눈에 거슬리지 않게 깔끔하게 관리며 키운다. 잔디 외에 다른 식물의 씨가 날아와 뿌리 내리고 싹을 틔우기라도 하면 `잡초'라 명명하고는 훅 잡아 뽑아 버린다.

시쳇말에`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이 있다. 개비름, 소루쟁이, 까마중, 방동사니 등 그들에게도 이름이 다 있다.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잡초에서 하나의 개체가 된다. 잔디밭 한 편에 노란 꽃을 피운 애기똥풀은 눈을 즐겁게 하고, 행복과 행운이란 꽃말이 있는 토끼풀은 한 번 더 눈길을 가게 하고, 달걀 꽃이라고도 하는 망초꽃은 손길을 가게 한다.

있는 그대로 보면 그의 특성을 볼 수 있게 되고, 어느 곳이든 자리를 잡으면 또한 그것의 자리가 된다. 그림책 `풀 친구'의 작가 이름이 `사이다'다. 물론 필명이다. `사이 between'의 의미를 차용하여 지은 이름이라 한다. 환상과 실제의 사이, 우리 사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 등 경계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의 예술가적 사명을 잊지 않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우리 삶에서의 경계는 자로 긋듯 구분하기 어렵다. 이쪽인 듯한데 저쪽 성향도 있고, 저쪽인 것 같지만 이쪽이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다. 그 속에서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한 길, 색다른 나를 위한 길이 어디인지 찾는 고민과 사유하는 그 길로 안내할 것이다. 개성과 보편의 경계, 이상과 현실의 경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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