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빚
즐거운 빚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8.0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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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일주일을 상쾌하게 시작하고싶은 마음으로 월요일이면 나는 목욕탕에 간다. 거의 버릇처럼 굳어져 일상이 되어버린 월요일의 첫 일과다. 그러나 어쩌다 화요일로 미루어지는 날이 있기도 하다. 오늘이 그렇다. 집을 옮기는 딸아이네 집에 다녀오느라 한 사흘 집을 비운 탓으로 월요일은 건너 뛰고 화요일 아침 동네 목욕탕을 찾은 것이다.

아침 열시가 조금 지나서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새참 시간이 되겠지만 짜여진 시간의 강요를 받지 않는 가정주부인 내게 아침 10시는 아무래도 식전 댓바람인 것이다. 일찍하니 가야 목욕탕은 깨끗하다. 콸콸 쏟아지는 뜨거운 탕에 푸욱 잠겨있을 때의 쾌감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상하다, 목욕탕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웬 할머니들이 이렇게 많이 오셨담.”

동네 친구들끼리 약속을 잡아 오신 것인지 노인정에서 단체로 오셨는지 알 수 없지만 파파 할머니들 여럿이 온탕의 주변에 앉아 있다. 탕에서 나온 할머니 한 분이 간신히 내 옆에 앉으신다. 우리 어머니와 비슷해 보이는 연배의 할머니, 자청해서 앙상한 등을 밀어드린다.

뼈에 살갗이 밀린다. 가냘픈 등은 괜스리 슬퍼 보인다. `우리 어머니는 누가 등을 밀어 드릴까?' 문득 떠오른 생각 때문에 울컥 하면서 더욱 정성드려 밀어드리고 비누칠을 하고 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그 옆에서 한 할머니가 빤히 쳐다보고 계신다.

“밀어드릴까요?”헌데 또 그 옆에도 하얀 할머니가 무너질 듯 앉아 타월로 혼자 등을 밀고 있다.

“제가 밀어드릴게요.”

“젊은이가 고맙기도 하지, 세상에!…” 어쩌고 할머니들은 한마디씩 치사를 한다.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던가. 손자손녀가 중학생인데 날더러 젊은이라니 괜스리 없던 힘이 솟구친다. 분명 목욕탕을 찾을 때만 해도 온몸이 찌뿌듯하고 온갖 것이 심드렁했었는데 힘들게 할머니들등을 밀어드렸는데도 이상하게 거뜬하고 힘이 솟는다. 이것도 좋은 일이라고!

자청해서 하는 일이라 그럴까? 아니면 내가 할머니들보다 젊은이(?)어서 그럴까? 혼자하는 목욕도 끝날 때쯤이면 가뿐 숨을 몰아쉬며 힘겨워 하는 것이 일상인데 오늘은 세 분의 등을 밀어드리고도 힘듦을 느끼기는커녕 거뜬하고 상쾌하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노래라도 흥얼거릴 참이다.

탕에서 나와 뚝뚝 흐르는 물을 수건으로 닦고 있는데 먼저 탈의실에 나와 쉬고 있던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얘기가 귓전을 간지린다.

“고맙기도 하지, 처음 보는 사람을.”

“어디서 만나도 몰라볼 것인데.”

“세상에 고마운 사람도 다 있지.”

등을 죄다 밀어준 사람이니 복 많이 받을 것이다라는 등. `아기 같은 할머니들, 뭐가 그리 고마운 일이라고 저렇게 쉽게 감동한담!. 겨우 세 분 등 밀어드린 걸 가지고…'

주섬주섬 머리도 제대로 못 말리고 피하듯 밖으로 나왔다. 작은 일에 진심을 다해 하는 많은 칭찬은 빚으로 작용한다. 즐거운 빚, 앞으로도 할머니들의 등을 다 밀어드려야 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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