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아서 보세요
의자에 앉아서 보세요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7.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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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전시장 풍경은 대개가 그렇듯 벽면에 작품들이 걸려 있다, 관람객의 시점도 당연히 벽을 향한다. 조각과 같은 입체작품들도 벽면에 좌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 작품을 올려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현대미술 쪽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과감하게 전시장 한가운데 작품이 등장하고 관람객 시점도 작품을 따라 중앙으로 이동되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다.

며칠 전 막 끝낸 내 개인전도, 거대한 고래 한 마리를 무모할 만큼 전시장 중앙에 설치해, 관람자는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3m 크기의 고래 한 마리를 바라보게 강요된다.

대부분 관람객의 첫 반응은 이렇다. “뭐야? 고래 아냐? 우영우? 아직 작품 설치 중인가?” 하하하. 달랑 고래 한 마리만 전시장이 있으니, 그 광경이 참말로 낯선가 보다. 더군다나 모든 조명을 다 끄고 두 개의 핀 조명만으로 전시장을 꾸몄으니, 전시장의 어두 컴컴함에도 살짝 긴장되었으리라….

관람객들이 좀 더 살갑게 다가갈 수 있도록 고래 작품 주변에 의자를 몇 개 놔두었다. 쭈뼛쭈뼛 두리번거리며 감상하기보다는 편하게 앉아서 여유롭게 작품도 보고, 낯선 공간에 대해 어색함도 털어 낼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의자에 자리 잡은 관객들은 대부분 10~20분 이상 전시장에 머무르며, 차분하게 작품과 공간이 주는 의미를 탐색했다. 서성거리다 1~2분 후에 전시장을 떠나는 관객에 비해 절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관객들 반응이 특이했던 건, 전시장을 나설 때 “작가님 잘 봤습니다. 좋은 작업 많이 하세요~”등등의 대부분 살가운 인사말을 건넸다. 어떤 손님들은 의자를 앞에 두고 앉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설치작품이다 보니 `의자'도 작품 연장선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날 나는 `앉아서 보세요'라고 쓴 작은 팻말을 의자 밑에 두었다. 대부분 관객은 멈칫하다가도 살며시 웃으며 편하게 앉았다. 그런데 그날 전시 시간이 거의 끝날 때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한 무리의 관객들이 들어오셨다. 무리 중 한 분이 의자 밑에 놓인 팻말을 보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 서 있지 말고 들들 앉아, `앉아서 보세요'라고 쓰여 있잖아~” 그의 말에 동료는 주저함 없이 일제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 이렇게 앉아서 보니 확실히 더 멋있네! 역시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감상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겨~” 이구동성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정작 당황한 건 작가인 나였다. 물론 전시장 바닥에 앉아 감상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또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의도는 분명 그게 아니었으니까! 20여 분을 바닥에 앉아 조용히 떠들기도 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하던 그들은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전시장을 나갔다.

나는 바로 팻말 글씨를 바꿨다. `의자에 앉아서 보세요' 그날 이후 바닥에 철퍼덕 앉는 관객은 없었지만, 생각하면 두고두고 웃음이 나오는 명(?)장면이었다. 물론 그들은 전혀 잘못이 없다. 앉아서 보라 해서 앉아서 봤을 뿐이다. 스스로 반성도 했다. 늘 내 생각대로 판단하는 가벼움에 대한 반성! 상대방은 항상 처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했다.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사로서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으로서도 상대방 처지에서 한 번쯤 더 생각해야 할 교훈이다. 아마 이번 개인전에서 그 어느 기억보다 우선될 수 있는 나의 손님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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