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이방인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7.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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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알러지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피부병이 시작된 것은 늦봄이었지만 별다른 차도도 없이 계절은 여름의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환경이 원인일 수 있다는 말에 거처를 잠시 제주로 옮겨 보기로 했고, 지금은 제주살이 열흘 차, 파도 소리를 들으며 칼럼을 쓴다.

피부 질환으로 인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워졌다. 제주살이 역시 그렇다. 5시 50분쯤 일어나 6시에 문을 여는 근처 탄산 온천에서 목욕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피부에 기포를 내는 탄산수 원탕에는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시는 할머니들이 가득이다. 지루한 시간을 견뎌볼 겸 할머니들의 수다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대부분은 못 알아듣고 만다. 외국어나 다름없는 제주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이방인의 느낌, 옛 생각이 절로 난다.

아이들이 캐나다에 있을 때 시이모는 아이들만 데리고 타국에 와있는 조카며느리를 특히 안쓰러워하셨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 시이모지만 나는 얼마나 의지 되던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이모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하교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곤 했다.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낯선 외국에서의 운전은 늘 긴장되는 것이었지만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사는 이모 집에 가기 위해선 운전은 불가피했다.

잘못된 도로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특히 고속도로에서 나들목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지만 나들목 이름이 비슷해서 늘 헷갈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보니 내가 나가야 할 나들목에는 33, 헷갈리던 다른 나들목에는 34, 이렇게 번호가 붙어 있는 것 아닌가? 번호가 병기되어 있으니 지명이 다소 부정확해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외국어보다는 숫자가 기억하기도 쉬웠다. 캐나다는 정말 선진국이구나 감탄했는데, 귀국해서 보니 우리 경부, 중부, 서해안 모든 고속도로 나들목에도 그런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이방인이 되었던 캐나다에서는 보인 것이다.

제주 살이 숙소 근처에 근사한 교회가 있다고 해서 어제는 구경을 다녀왔다. 방주교회, 이름처럼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삼은 교회답게 건물이 물 위에 떠있었다. 건물 주변을 빙 둘러 얕은 못을 만들어 둔 덕에 그리 보인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돛이나 닻이 없어서 스스로 멈출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교회가 딱 그런 느낌을 주었다.

이 교회를 설계한 사람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불리는 건축가 이타미 준이라고 한다. 이타미 준의 본명은 유동룡,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일본에 살았던 재일 한국인이다. 일본어에는 그의 이름에 쓰이는 `유(庾)'자가 없었기에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에서 준을, 생애 처음 이용한 공항의 이름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와 그의 이름 이타미 준이 되었다. 국적을 떠나 살겠다는 의지였다고 한다.

제주에서 우리는 보지 못한 것을 본 이방인 이타미 준, 그는 제주에 몇 개의 건축물을 더 남겼다. 제주의 둥글둥글한 오름의 능선을 이어 만든 포도송이 같은 호텔, 제주의 바람과 물과 돌을 주제로 한 박물관, 비오토피아라는 이름에 마음을 담은 주택 단지 등등 그는 자연과 이어지는 조화로운 건축물을 남기려 노력했다.

오늘은 칼럼을 완성하는 대로 이타미 준이 설계했다는 물, 바람, 돌의 박물관에 가볼 계획이다. 그는 `미술품이 전시된 일반적인 박물관이 아닌 명상의 공간으로서 박물관을 제시하였다는 박물관 설명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래, 물, 바람, 돌을 능가할 미술 작품이 무엇이 있던가? 피부병 덕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이 또한 복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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