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드라마 작가다
아내는 드라마 작가다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07.17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을 했더라면, 가고 싶은 여행을 맘껏 했더라면,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어 보았더라면, 이런 후회가 드는 일은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후회 가득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꿈을 꾼다. 그것 중 드라마 속의 갈등과 시련 그리고 용서와 희망이 어떤 이들에겐 또 다른 경험이자 삶일 것이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공중파 3사 채널 드라마 방송은 물론 `한 번에 몰아보기'로 볼 수 있는 유료 채널까지 모든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본다. 나는 아내의 이런 습관이 바뀔 거라 기대해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드라마에 집착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이 즐겨보는 드라마가 몇 편이나 되지?”

“몇 개 안 되는데, 왜요? 20여 편 될까?”

하루도 빠짐없이 시청하면서 소리 없이 울다가, 까르르 웃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뭔지 모르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상상하지 못할 세계에 이르렀다. 뭘 바라겠는가? 그러면서도 자기 할 일은 다 한다. 청소, 빨래, 반찬이며 특히 집안 대소사까지 불협화음 없이 잘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문제는 드라마를 보느라 늦잠을 잔다는 것이다. 어느 땐 드라마를 봐야 한다며 수면제까지 복용한다. 당연히 피곤함이 턱밑까지 올라와 있다. 그래도 아내는 웃고 있다. 아내의 드라마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일편단심이다.

아내는 왜 이렇게 드라마를 좋아할까? 아내는 드라마 속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희로애락을 맛본다. 한 장면에서도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양자 감정을 갖는다. 특히 헤어질 수밖에 없는 연인이 재회로 이어지는 장면은 모든 중년 여성들에게 최고의 순간이다. 아내 역시 환희에 차 있다.

지난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겨울, 아내는 책을 붙들고 있었다. `드라마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제목이었다.

“웬일이야? 책을 다 읽고,”

“응, 드라마 작가나 돼보려고, 롤모델이 노희경 작가야!”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타고난 글재주가 있어 어렵지 않게 좋은 글을 쓴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경쟁률이 높은 공모전에서 열심히 준비한 내 글이 떨어질 때의 심정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제천에서 작은 아버님 내외분이 오셨다. 저녁 식사 중에 나는 작은 아버님께 글쎄, 이 사람이 요즈음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작은 아버님께서 버럭 화를 내셨다.

“뭔 소리야, 그게 쉬운 건 감, 아무나 허는 거야? 어릴 적에도 혼자 방구석에서 TV만 보더니, 집어치워, 남편이나 잘 챙겨”

아내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었고 지금의 작은 아버님 내외분이 키워주셨다. 그래서 내겐 장인, 장모인 셈이다. 아내는 우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내의 눈치를 본다. 어쩌면 어릴 적 아내의 유일한 친구는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롭고 낯선 세상을 엿보는 일, 그리움, 걱정, 사랑, 증오 등을 함께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내가 미안해! 당신의 꿈을 이루는데 내가 조연이든, 뭐든 해 줄게.”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드라마 보면서 작가가 되겠다는 그녀가 사랑스럽고 고맙다. 당신은 이미 드라마 작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나 자기 삶에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은 꿈을 갖고 산다. 아내는 드라마 속 사건이나 내용을 보면서 위안을 찾는다. 인생은 `드라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산다는 거 별거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드라마를 보며 오징어를 씹고 뜯어보자. 그리고 그 속으로 여행을 해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