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데일 패러독스
스톡데일 패러독스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2.07.07 1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미군 장교 스톡데일(J. Stockdale)은 베트남전쟁 당시 1965년부터 8년간 동료와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포로수용소에는 “이번 부활절에는 풀려날 거야, 추수감사절에는 풀려날 수 있을거야, 크리스마스 때는 풀려날 거야”라며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에 기댔던‘낙관론자’들과,“풀려나긴 글렀어. 여기서 죽을 거야”라며 포기한‘비관론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계속되는 상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거나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스톡데일은 이 속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쉽게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대처하면서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며 의지를 다진 ‘현실주의자’들이 기나긴 포로수용소 생활을 이겨냈다.
 
# 막연한 낙관주의 vs 현실적 낙관주의
스톡데일은 포로생활 중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며 뚜렷한 목표 달성 의지를 보이면서 비현실적이고 현실을 왜곡하는 막연한 낙관주의를 경계했다.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자신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이러한 합리·현실적 낙관주의를‘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 부르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믿음은 잃지 말 것을 강조했다. 
근거 없이 막연히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막연한 낙관주의적 태도와 현실을 직시하며 신념을 잃지 않는 합리적인 낙관주의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낙관주의는 객관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탕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 그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 자세를 취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융통성 있는 태도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 
스톡데일은 그의 자서전에서 에픽테토스(Epictetus,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 철학자)를 읽었기 때문에 냉혹한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고 고백한다. 에픽테토스는 노예로 출생하여 주인에게 고문을 받아 절름발이가 되었다. 사람들이 절룩거림을 안쓰럽게 여기자 “절뚝거림은 다리에 장애가 될지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라며,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면서 이 신체적 장애가 자신의 정신·의지까지 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하며,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에만 노력하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신에게 맡겨라’라고 말했다.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은‘안으로는 자유, 밖으로는 불굴의 저항’이다.‘안으로의 자유’를 얻기 위해 에픽테토스가 가장 강조한 것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과‘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정신의학자 이일준은 그 이유를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손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전기밥솥에 코드를 꽂지 않아 밥이 늦어질 때, 대부분 전기밥솥 앞을 서성이면서 안절부절못한다. 전기밥솥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면 밥이 더 빨리 될까? 전기밥솥 앞에서 용을 쓴다고 밥이 더 빨리 될까?
우리의 욕망 안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혼재되어 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지는 않은가.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원해놓고 에너지를 사용하면서‘왜 안 되는 거야?’라고 인생을 원망할 수 있다. 뭐든 가능할 것 같은 막연한 낙관주의에 인생을 맡기면서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자책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나는 전기밥솥에 에너지를 쓰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